1989년, 미국무성 정책기획실에 정식 직원으로 근무하던한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상징된, 동구에서의 일련의 사태가이 선언을 뒷받침했다." 그로부터 3년 뒤 그는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을 출간하면서 일약 문제적 철학자가 되고만다. 이것은 일종의 승리선언, 그것도 이중의 승리선언이었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은 그가 말한대로 ‘인정투쟁 의종말이자, ‘철학‘의 종말이기도 했던 셈이다. 이후부터 제기되는 갖가지 사회-정치-경제 문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원리가 관철되기만 하면 해결될 사안들이기 때문에, 더이상 ‘원리‘를 둘러싼 형이상학적 싸움은 불필요하게 되었으며, 모든 것은 과학기술자, 국가 관료, 그리고 기업가의 일사불란한 ‘처리‘를 통해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후쿠야마의 독창성은 이런 세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을 단순히 ‘최후의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의 ‘최후의 인간‘은 니체적 의미에서 "승리를 거둔 노예" 를 의미하며, 그런 의미에서 거부되어야 할 인간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역사를 다시 전개할 인간, 인정투쟁에 목마른 ‘최초의 인간‘으로의 회귀를 설파한 것은아니다. 그는 이 ‘최후의 인간‘과 ‘최초의 인간‘모두를 거부한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 뒤에 요청하는 인간의 형상은 ‘최후의 인간‘인 노예-동물도 아니고, 전쟁과 혁명을원하는 ‘최초의 인간‘도 아니다. 그가 요청하는 인간은 바로과학기술-경제활동을 통해 ‘우월욕망 megalothymia‘ 을 충족시키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은 결국 긴 마차의 대열이 향하게 될 ‘종착점‘이 결정되었음을 알리는 선언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냉전 종식 이후에 벌어진 전쟁과 분쟁은 후쿠야마에게 아무런 ‘의미 - 목적‘ 을 갖지 않는다. 이는수많은 사람이 엄청난 피해를 입고 죽어나가는 비참한 광경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흘리는 피가 어떠한 새로운 정치적 전망이나 사유를 요청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조르조 아감벤의 정치철학은 이런 언설에 대한 응답으로제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의미 = 목적 없는‘ 싸움속에서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서구 정치철학의 심연에 웅크리고 있던 하나의 인간 형상을 찾아낸다. ‘호모 사케르‘ 라고알려질 이 형상을 통해 역사와 철학을 종말이라는 폐허에서구원해내려고 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감벤이 이 종말의 형국속에서 또다른 ‘의미 = 목적‘을 찾아내려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인간의 역사와 행위가 추구해온 ‘의미 = 목적‘ 이 사라진 현재야말로 사유 본연의 임무가 전개되는 국면이라고 주장한다.
아감벤은 ‘최후의 인간‘과 ‘최초의 인간 사이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기술경제인 한가운데에서, ‘인간‘을 ‘인간‘ 일 수 있게 해온 정치와 언어의 심연을 들여다보려 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주권‘ 에 관한 물음을통해 전개되며, 그 길잡이 역할을 한 이들이 바로 칼 슈미트와 발터 벤야민이다. 바꿔 말하면, 슈미트와 벤야민이 열어놓았지만 충분히 전개되지 못한 ‘역사의 종말‘에 관한 사유를아감벤이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감벤을 통해이들의 ‘역사의 종말‘을 추적하다보면, 그 근원의 연도인1848년과 맞닥뜨리게 된다. 아마도 후쿠야마의 승리선언이무효라고 선언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사유가 1848년을 전유한 방식을 파헤쳐보는 일이 필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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