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서 묘사되는 소돔과 고모라라는 죄악의 도시는 병든 사회를 나타낸다. 왜냐하면 그 사회는 ‘세상의 안정‘을 향하여 서로를 도울 수 없었기때문이다. ‘한 사람은 잃지 않고 다른 사람은 이익을 얻는 그러한 방법으로 서로 돕기를 거절하였으므로 소돔과 고모라는제1장에서 언급된 팔꿈치가 반대로 휘어져 서로 협조할 수 없는 연옥의 상황과 유사한 그러한 비참한 시장을 창조했던 것이다.

 창세기에 이와 같은 종류의 ‘병든 시장‘으로 비난받는또 다른 사회가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하늘까지 닿도록 탑을 세우려고 한 바빌로니아의 고대도시 바벨(히브리어로바빌론)의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 결과 신은 벌을 내려 사람들을 지상 각지로 흩어지게 하였다.

배들에 의하면, 바벨 사람들의 가장 큰 실수는 사회적 경제 활동을 자신들의 목적으로 변형시키려고 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우 비록 팔꿈치가 반대로 휘어진 사람들이 서로를 먹여주는 수준까지 왔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천국이라고 할수는 없는 것이다.

제1장의 ‘천국‘에서 그곳의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는 식탁에 놓여 있는 맛있는 음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음식을 통하여 더욱 즐거운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인데, 즉 그것은 교환이다. 

만약 팔꿈치가 반대로 휘어진사람이 음식을 옆사람에게 넣어줄 때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모르고 음식을 먹는 상대방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않는다면 음식을 계속하여 입에 넣어주는 행위가 상당히 상대방을 당혹스럽게 할 것이다. 숟가락과 포크가 계속하여 얼굴을 찌르는, 우리가 어렸을 때 경험한 극히 불편한 그런 일을당하면 우리는 아마도 식욕을 잃어버릴 것이다.

‘육체‘와 ‘혼‘의 구별은 간혹 이해가 되기도 하고 더러는 우리를 잘못 이끌기도 하는데 즉각적 즐거움과 누적된 즐거움의차이점처럼 즐거움의 영역으로 고쳐 표현될 수 있다. 육체를만족시키는 것은 육체가 고통받게 하는 것처럼 쉽다. 

 모든 것은 우리 신경단위세포의 속도에 의하여 결정된다. 만약 우리의 신경세포가 속도제한이 있고 아울러 즐거움과 고통의 보상경험을 발생시키는 가장 빠른 길이라면 상대적으로 혼의 경험속도는 아주 늦다. 

 혼의 경험은 우리 삶의 어떤 단계가 지나가고 난 후 진실로 완료되고 명백해지는 것이다. 육체의 경험은반복을 통하여 쉽게 만족되고 그 하나의 산물로서 죽음에 대한 자각을 가져온다. 

그러나 혼은 이와 같은 경험을 다시 읽고이 경험을 존재로 바꾼다. 책임을 가지고 살 때 우리는 잠재성을 극대화하고 부를 창조하고 우주의 거대한 시장(GreatMarket of the cosmos)을 위하여 ‘세계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육체의 풍족이 혼의 풍족에 의하여 한정되어진다는 것과 혼의 경험을 희생시켜 육체 경험을 강조하는 것을 피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이 법칙은 결핍을 야기하는 죽은 이중의 시간낭비라는 것을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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