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것이 틀렸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이 나올 정도로‘ 중국 이해의 불확실성은 심각하다.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선입견으로 인해) 잘못 이해해서이고, 부분적으로는 중국정부가 (그 누구도 전에 가본 적 없는 길을 가느라) 불확실성 속에 있어서이다. 중국공산당은 계속 집권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일반인은 물론이고 중국전문가 사이에서도 중요한 화두가 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일 터이다.
분단된 한반도 남쪽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화두가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점점 더 갈등이 심해져 ‘신냉전‘이 거론될 정도이다보니 두 초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가 목하 심증한관심사이다. 이 질문은 한국사회 내부에서 논쟁 중인 중장기 발전 담론과 결함되어 있다.
이 일을 나름으로 감당하기 위해 저자는 100년의 역사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도하려고 한다. 2019년은 마침 중국현대사의 기점으로 흔히 주목되는 1919년 5·4운 동의 100주년을 맞은 해였고, 2021년은 공산당 창당100주년이다. 2019년 또는 2021년의 눈으로 1919년 또는 1921년을 새롭게 보는 동시에 100년 전의 눈에 비춰 지금의 대국 중국을 다시 보는 쌍방향성을 의미한다.
이 100년에 관한 견해는 ‘현대 중국‘으로 보거나 아니면 ‘혁명 중국으로 보는 입장으로 갈릴 수 있다. 전자가 1919년으로 시작된 일반적 의미의 현대사를 가리키고 독립자주와 부강을 추구하기 위해 (서구 경험을모델로 한) 국민국가 건설과 공업화를 실현하는 과정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반(半)식민·반(半)봉건사회 극복을 위한 신해혁명(辛亥革命)과 국. . 민혁명(國民革命)에 이어 공산혁명으로 귀결된 반제 · 반봉건 혁명의 연속체를 가리키고 (서구와 다른 독자적인 역사 경험을 부각한다.
지금 중국에서는 근현대사를 성공의 이야기로 서술하는 분위기가 점점 짙어지는 듯하다. 청말의 역사가 좌절과 굴욕으로 점철되긴 했으나, 비교의 대상을 다른 "모든 비서방국가로 넓혀보면 그것은국가전환의 매우 성공적인 역사"라는 것이다.
이 바탕에는 17세기 후반기 이래 3세기에 걸친 장기 과정으로 보면 ‘국민국가이자 제국‘인 중국이 ‘크고 강한‘ 현대국가로 전환한 과정이 제대로 설명될 수 있다는 식의 패러다임이 작동한다.
그러나 그처럼 장기 시간대에서 중국역사의 구조를파악하다보면 단·중기 시간대의 변화에 소홀하기 쉽다는 점을 지적하지않을 수 없다. 특히 중국이 아편전쟁 (제1차 중영전쟁, 1839~42년)을 겪고 불평등한 세계자본주의체제에 편입된 이후의 역동적 변화가 갖는 의미가 간과되기 마련이다. 그 폐단의 핵심인 ‘반(半)식민성‘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해진다. 이로 인해 (의도하는 않는) 중국특수론(예외주의)에 귀결되기쉽다.
한걸음 더 들어가, 혁명사 패러다임의 근간인 ‘반제·반봉건‘이란 과제도 유동하는 역사적 맥락에 놓고 파악할 수 있다. 아편전쟁으로 세계체제에 강제로 편입된 중국의 사회구성을 반(半)식민·반(半)봉건사회로 파악하고 이에 기초해 중국공산당이 정립한 혁명전략이 반제·반봉건이다."
그런데 이중과제론의 시각에서 다시 보면, 전자는 근대적응에 치중했고 후자는 근대극복에 치중한 길이다. 반제·반봉건과제는 자본제적 관계의 작용에 상대식으로 소홀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민족자본가의양면성은 그들이 반제로 나설 가능성 곧 통일전선의 과제를 기민하게 포착하는 데 때로는 장애가 되기도 했다. 저자 식으로 말하면 이중과제 동시 수행의 긴장이 유지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큔(Philip A, Kuhn)이 제기한 ‘현정‘(constitution), 달리말하면 국가 구성의 근본적인 제도와 실천 곧 ‘체제‘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저자가 그의 패러다임에 주목하는 이유는, 100년의 변혁을 명·청대 이래 장기 지속된 헌정의 (agenda)라는 구조 속에서 파악함으로써 근대주의의 폐해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 속에서 각 주체가헌정의제를 어떻게 구현해낼 수 있었는가를 일관성 있게 사고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정치참여의 확대와 더불어 국가의 권한 및정통성 제고라는 두가지 요구를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헌정의제의 역사 속에서 매 세대가 자신의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풀어나가려 한 ‘이중과제‘의 구현 과정에 착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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