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독자들이여, 바로 여기에 지휘자라는 존재의거대한 미스터리가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얼 하는 사람들인가? 무엇이 위대함을 결정하고, 무엇이 숙련도를 결정하는가? 무수한 아마추어 평론가들(인터넷을 보라)럼 여러분도 캐플런과 빈 필하모닉의 말러를 "하나의 게시라 여기는가? 그렇다면 화성학과 대위법, 독보법을 배우는데 평생을 바친 사람들은 어찌 되는가? 콩쿠르에 출전하고,
지방 오케스트라의 보조 지휘자에서 출발해 2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보좌 지휘자로 힘들여 한 발씩 나아가고, 그러고도 빈에서 말러의 교향곡 2번을 지휘할 기회를 평생 잡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찌 되는가?

기묘한 무법의 세계 모든 것과 그에 정반대되는 또 다른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 이는 우리가 속한 분야, 우리가 추구하는 예술, 우리가 종사하는 극장과 우리가 하는일을 위대하게 만드는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겠지만ㅡ를 탐구하는 것이 나의 집필목적이다. 

여러분이 우리를 사랑할 때 우리는 천재가 된다.
여러분이 우리를 묵살할 때 우리는 사기꾼이 된다. 우리는천재인 동시에 사기꾼이며, 또 그보다 더한 그 무엇이다. 그리고 그보다 미약한 무엇이기도 하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우리를 보며 신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지휘자 역시 그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가 그러하듯, 우리가 무엇이며 무엇이 아닌지를 환히 밝히는 데 도움을 주는 지휘자 신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지휘란 이를 행하는 자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는 일이라는 점이다. 가장 위대한 지휘자들조차 다른 지휘자들에대한 이야기를 입에 올리곤 한다. 대개는 작고한 지휘자들이야기를 언급함으로써 현존 지휘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지 않도록 나름의 가림막 장치를 끼워 넣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도 지휘 기법은 중세 시대마냥 장인이 젊은 도제에게 가르치고 전수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번스타인의 말러 해석이 갖는 주요한 특징 하나는 끊임없이 요동치는 템포다. 번스타인은 청자가 주목해주길 바라는 지점이 다가오면 음악의 템포를 늦추어 관심을 붙들곤한다. 1악장의 처연하고 자그마한 두 음표짜리 선율 또한 들숨과 날숨처럼 들린다. 

카라얀의 말러 교향곡 9번 1악장은 템포가 훨씬 꾸준하다. 대신 카라얀은 점차 긴장감을높여가며 각각의 클라이맥스를 넘고 또 넘는다. 랄렌탄도(템포 확장)를 비롯한 유동적 템포 운용 기법은 자제하고 호홉이 디 긴 임팩트를 노리는 양상이며, 뚜렷이 분절되는 자그마한 아치를 여럿 두기보다는 거대한 하나의 아치를 그려나가는 인상이다. 이 모든 것이, 그리고 이로써 교향곡 전체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이 서사시적 작품의 고작 첫 몇 분 동안 일어난다.

지휘 예술은 역사가 그리 깊지 않다. 기껏해야 200년쯤거슬러 올라가면 끝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세 길드마냥나이 많은 대가가 시범을 통해 가르치는 것이 보통이다. 지휘자가 작업하는 모습은 신비로운 매력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그 모든 파워를 느끼다니 참 근사한 기분이겠다"라고 말하곤 한다(이런 소리를 하는 건 거의대부분 비즈니스맨들이다). 그럴 때면 정작 나는 아무런 파워도 느끼지 못한다고 답하곤 한다. 내게 지휘란 무엇보다 힘겨운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휘대에 오르면 강력한힘이 나를 통과한다는 점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휘의 끌힘은 심오하다. 소리의 창조와 소리의수용 사이 중심에 존재하는 데서 오는 기쁨은 마치 마약처럼 우리를 끌어당긴다. 지휘를 잘하는 건 무척 까다로운 일이지만,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는 음악가들과 청중 사이에 예측할 수 없는 신성한 ‘화합‘이 이루어진다. 누군가의인생에 진한 각인을 남기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빚어내며,
신비에 빛을 비추고, 시간을 멈추며, 인간으로서 우리의 본질을 모든 것, 모든 이와 연결하는 불가해한 그 무엇의 일부가 된 듯한 순간이다. 그렇다, 지휘란 그런 경험일 수 있는것이다.

그 어떤 지휘자도 오케스트라 없이 일을 할 순 없다. 우리는 오로지 실전을 통해서만 훈련할 수 있다. 스튜디오에서홀로 연습한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게다가 공연이 마음에 들지 않은 누군가가 쏜 비판의 화살도 모두 우리가 받아내야 한다. 기립 박수를 받고 훌륭한 리뷰 기사가 게재되더라도 우리를 다시 불러준다는 보장은 없다. 다시 말해 ‘지휘자의 커리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일련의 모든과정이 무척 무작위의 흐름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선형 증가 궤도처럼 보이는 것은 오로지 그 핵심만간추려 정리한 지휘자의 홈페이지에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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