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은 한국 현대시인의 대한 시인의명사이다. 그는 명실 공히 이 땅의 민중의 한과 슬픔으로 덧난 상처를 보듬어 안은민족시인이다. 그가 생애에 남긴 단 한 권의 시집인 ‘진달래꽃」은 무수히 많은유·무명 출판사에서 숱한 판본으로 거듭 출간되었다. 그의 시집은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았지만, 세월과 무관하게 이 땅의 베스트셀러였다.
평론가 김병익에 의하면 김소월은 "서구의 데카당적 시상과 이국적인 언어형식만이풍미하던 시대"에 돌연히 나와 "토속의 이미지와 전통적인 7.5조의 민요풍의 리듬 속에 동양의 심상을 최고의 격조로 수용한 시인이다.
후학 평론가 송희복은 그를 일제강점기의 민족적 삶의 갱생을 부르짖은 경륜가가 아니었다. 조만식 등을및 민족지도자와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흠모한 소지식인에 불과했고, 또 당대의 표준적 생활수준으로부터 그다지 벗어나지 않았던 한 사람의 농민, 한 사람의 식민지 잔맹에 불과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식민지 잔맹에 지나지 않는 이 청년, 저 북방의 소도시에서 신문지국을 경영하며 비판과 술로 서서히 자신의 생명의 불을 소진시켜가던 이 평범한 청년이 어떻게 "우리 시대의 최고의 높이에 도달한 민족시인으로 태어날 수 있었을까.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난 것과, 아무 일도 하지않고 혼자 구석진 곳에서 무언가를 소리 없이 중얼거리는 폐인 아버지는 소월의운명이 품어 안은 원초의 어둠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 소월의 비사교적인 성격과폐쇄적인 내향성은 그 어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페인으로 일생을 마친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혐오의 양가감정에 휩싸여 있던 소원을소극적이고 여성적인 시의 세계로 이끈 것은 어머니와 수시로 옛날이야기와 민요를 들려주던 숙모로부터 받은 영향이다. 유년기에 들은 숙모의 이야기들은 소월의문학적 자양이 되기도 하는데, 평안도 박천 진두강가에 살던 오누이가 계모의 학대로 죽어 접동새가 되었다는 설화를 담은 「접동새」 같은 시는 바로 숙모가 들려준 이야기를 모태로 쓰인 것이다.
문단의 성향이 카프 중심으로 한창 떠들썩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한편에서 묵묵히 우리 고유의 언어와 정서를 빚어내던 김소월이 이해 펴낸 이 시집은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그의 시를 가리켜 "민요적 리듬과 부드러운 시골 정조 외에는 보잘것 없다"라는 평가도 없지 않았지만, 그는 이 시대 다른 작가들과 달리 서구사조의 모방이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색채와 목소리로 노래한다.
그의 전반적 작품 경향은 우리의 전통적인 시편인 정읍사」, 「가시리」와 맥이 닿아있다. 그는 님과의 사랑, 이별, 한 등을 향토적, 민요적 언어와 율격에 담아 표현해낸다. 그 때문에 수많은 주옥같은 시편이 있음에도 ‘유교류의 휴머니스트‘ 라든가과거 지향적 수동주의‘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유교적 과거지향은도덕이나 규범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님이 원할 때면 언제라도 기꺼이 보내드릴용의가 있는 융통성, 즉 현대적 자유가 부여된 복고주의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소월의 ‘한‘은 그의 성장기적 배경과 삶의 고단에서 오는 우울, 그리고 시인이 말하듯 ‘남의 나라 땅에서의 서러움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를 따라다니던근원적인 존재에 대한 허무의식과 슬픔에서 연유한 것에 더 직접적 원인이 있었던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곧 그의 생애의 비극적 결말과도 연결된다. 그의 죽음의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확증은 없다. 다만 그가 죽기 얼마 전 김억에게 보낸 편지 일부를 보며 당시 그의 허무를 짐작할 따름이다.
문학도, 생활도, 삶에 대한 일체의 애착도 놓아버린 소월은 술에 기대 세월을 보낸다. 소원이 술꾼으로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문중에서조차 그를 불랑자‘로 낙인찍고 천시한다. 잦은 통으로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폐해진 소월은 1934년 12월 23일 아편을 먹고 서른세 해의 생을 마감한다. "민족의 토속어·토착어를 가림새 있게 시적으로 승화하는데 발군의 역량을 발휘" (송희복)한 지난 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민족시인이었던 김소월은 식민지 변방의 소지식인으로회의와 실의의 세월을 보내다가 그렇게 덧없이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만 것이다. 유장한 슬픔과 한의 시편들을 빚은 소월이 죽은 뒤 거의 한 세기에 걸쳐 그의 민요적가락과 민족적 설화, 정한을 담은 시편들은 오랫동안 시름 많고 흠집 많은 우리 겨레의 심사를 달래주며 널리 애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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