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는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다. 산타클로스의 기원과 역할을 설명해주는 신화가 없기 때문이다. 산타클로스와관련된 반역사적인 이야기도 없기 때문에 전설 속의 인물도 아니다. 그렇지만 초자연적이고 변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존재이고, 항상형태가 일정하며 정해진 기간에 되돌아와서 전유적 역할을 하는 존재로 정의되는 산타클로스는 신적인 존재에 속한다. 

산타클로스는 우리 사회에서 일정한 연령대(산타클로스의 존재를믿는다고 여겨지는 연령대)에게 신이다. 산타클로스와 진정한 신의 차이가 있다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는 산타클로스를 믿으라고 부추기며온갖 속임수를 동원해 그 믿음을 지켜가라고 애쓰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산타클로스는 어린이에게 청소년이나 성인과는 다른 사회적 지위를 갖는다는 증거이다. 이런 점에서 산타클로스는 민족학자들이 대부분의 사회에서 연구한 관습과 믿음, 다시 말하면 통과의례와 입문의례의 총체와 관계가 있다. 

오늘날 벌을 주는 ‘카치나‘가 금지되자,
잊힌실증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산타클로스를 다른 단역들처럼 망각의 늪에 집어 던져야 했겠지만, 똑같은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며 산타클로스의 너그러운 면을 부각시켰다는 사실이 무척 의미심장하다. 이런 점에서 교육은 합리적이지 않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매질하는 할아버지만큼이나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이런 점에서는 교회의 대응이 옳다). 오히려 이제 우리는 신화의 세계로 옮겨간다.
따라서 이런 현상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통과의례와 그에 관련된 신화가 인간 사회에서 실질적인 기능을하는 것은 분명하다. 어른들은 통과의례의 그 신화를 이용해 어린아이들에게 질서와 순종을 요구한다. 1년 내내 산타클로스가 찾아올거라고 말하며, 아이들에게 얼마나 말을 잘 듣느냐에 따라 산타클로스의 선물이 달라짐을 기억시킨다.

산타클로스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에게 기분 좋게 가하는 ‘속임수‘만이 아니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대체로 그 믿음은 두 세대 모두에게 상당히 부담스런 거래의 산물이다. 크리스마스라는 관습 전체와, 우리가 집 장식에 사용하는 푸른 식물-전나무와 호랑가시나무, 담쟁이덩굴과 겨우살이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에는 단순한 장식물인 푸른 식물들이 옛날에는 적어도몇몇 지역에서는 두 사회집단이 ‘교환‘하는 물건이었다. 

다시 말하면 어린아이들이 바로 카치나이기 때문이다. 카치나 의식이란 속임수는 현실과의 타협이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이 그현실 자체이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은 그 속임수에서 배제될 수밖에없다. 어린아이들의 공간은 다른 곳에 있다. 가면과 살아 있는 사람이있는 곳이 아니라, 신과 죽은 사람이 있는 곳이다. 신은 죽은 사람이며, 죽은 사람은 어린아이이다.

 입문 의식을 거친 사람과 입문 의식을 거치지 않은 사람 사이의관계는 긍정적인 성격을 띤다. 죽은 사람들을 대신하는 집단과 살아있는 사람을 대신하는 집단, 두 집단 간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다. 게다가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역할이 흔히 몇 번이고 뒤바뀐다. 양면성이 관점의 상호성을 유도하고, 거울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경우처럼관점의 상호성이 무한히 반복되기 때문이다. 

 입문 의식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죽은 사람이라면 입문 의식을 초월한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흔히 그렇듯이, 입문 의식을 거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겁주기 위해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구현한다면, 의식의 후반부에서 그유령을 물리치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막는 것은 입문 의식을 거치지 않은 사람의 몫이다. 

산타클로스와 관련된 풍습과 믿음이 입문 의식의 사회학에 속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런 풍습과 믿음을 통해어린이와 성인 간의 대립 뒤에 감추어진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간의 대립이 명백히 드러난다는 것을 인지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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