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꺼리고 황폐화를 피해 자신을 순수하게 보존하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견뎌내고 죽음 안에서 자신을 보존하는 삶이 정신의 삶이다. 절대적 파열에서 자신을 발견할 때 정신은 비로소 자신의 진실을 얻는다. (…) 정신은 부정적인 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그놈의 곁에 오래 머무름으로써만 이런 위력이다.

노력하는 한에서, 인간은 헤매기 마련이다"라는 괴테의 말마따나, 사람은 부정하는자, 안주하지 못하는 자, 끝없이 헤매는 자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안쓰럽기 그지없죠. 니체의 초인과 스피노자의 현자가 평범한 인간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한편으로 납득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그 인간적인 헤맴이 곧 진실의 움직임이라고 가르치는 철학자가 있으니, 바로 헤겔입니다. 헤겔의 진실은 한없이 멀고고요한 수평선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거세게 출렁거리는 파도입니다. 

또한 저자가 보기에 자신의 철학 작품이 동일한 대상을 다루는다른 시도들과 어떤 관계인지 규정하면, 낯선 구경꾼의 관심을 끌어들이더라도 정작 진실을 아는 데 관건이 되는 무언가는 어둠 속에 묻힌다. 참과 거짓이 맞선다는 생각을 확고히 품은 사람은기존 철학 시스템에 대한 찬성이나 반박을 기대하고 그런 시스템에 대한 설명에서 찬성과 반박 중에 오직 하나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은 철학 시스템들의 차이를 진실이 진보하여 펼쳐지는 과정으로 개념화하기보다는 그 차이에서 오직 모순만 본다. 

 마찬가지로 차이는 오히려 사태의 경계 경계는 사태가 끝나는 곳에 있다. 바꿔 말해 경계는 사태가 아닌 놈이다. 따라서 목적이나 결론들, 아울러 차이들과 이것저것에 대한평가를 제시하는 작업은 겉보기보다 더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작업은 사태를 다루는 대신에 항상 사태를 넘어서 있으며, 그런 삶은 사태 안에 오래 머물며 자신을 잊는 대신에 항상 다른 놈을 향해 손을 뻗기 때문이다. 그런 앎은 사태 곁에서 자신을 사태에 내주는 대신에 오히려 자기 곁에 머문다 가장 쉬운 일은 내용과 견실성을 갖춘 놈을 평가하는 것이요. 더 어려운 일은 그놈을파악하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이 둘을 결합하여 그놈의 표현을 끌어내는 것이다.

진실이 실존하는 참된 모습은 진실을 다루는 학문 시 수에 없다. 철학이 학문의 형태에 삶을 향한 사람이라는 이름리고 진정한 앞으로 되는 목표에 더 접근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바다. 이 학문이어야 할 내적 필연성은앞의 본성에 있고, 이에 대한 만족스러운 설명은 오로지 절차 자체의 서술뿐이다. 한편, 이 학문이어야 할 외적 필연성은과 개별 동기들의 우연성을 제쳐놓고 그 필연성을 일반적으로 파악한다면, 내적 필연성과 동일한데, 다만 그 모습은 그 내서 발견성의 계기들의 현존재를 시대가 제시할 때의 모습이다. 따라서 지금은 철학이 학문으로 격상할 때임을 보여주는 것이 그 객상을 목적으로 가진 시도들을 정당화하는 유일하게 참된 걸릴 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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