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패스 상대의 표정에 따라 작전을 바꿉니다. 상대의 표정을읽어 내지 못하면 게임을 편집할 수 없어요." 이런 의미로 쓰이는 ‘편집‘이라는 말은 참으로 신선하다. 종래의 ‘편집‘이라는 말에서의 느낌보다 훨씬 더 다이내믹하고 연속적인 변화의 힘이 풍부하다.
한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나 우메사오 다다오 관장이 중시하는 ‘편집‘이라는 말은 창작이나 역사, 문화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영화의 본질은 편집이다."라는 말은 영화 제작의 마지막 공정에서필름을 자르거나 붙이는 편집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할 뿐 아니라영화 자체가 편집적인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신문기사는 기자가 쓴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볼 때 기자가 쓸 수있는 것은 사실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신문마다표현도 다르다. 그 기사의 헤드라인(표제)도 기자와 데스크가 붙인다. ‘터널 사고‘라고 쓰느냐, ‘터널에서 참사‘라고 쓰느냐에 따라 뉘앙스가 전혀 달라진다. 똑같은 기사에 ‘수상, 고뇌의 결단‘이라고 불이느냐, 수상, 마침내 결단‘이라고 붙이느냐에 따라 정보의 표정이달라진다. 객관적 사실을 그대로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거꾸로 각 신문이 이 부분에서 수완을 발휘하기도 한다.
텔레비전 뉴스에도 엄청난 편집을 가한다. 언뜻 보면 보도해야 할 사실만을 전하는 것 같지만 텔레비전 방송국의 편집 현장을 한 번이라도 보면 알게 되듯이 10배에서 50배의 소재 영상을 이리저리 잘라내고 새로 잇는 한편 내레이션이나 아나운서의 원고, 뉴스캐스터의 말도 덧붙인다.
그래도 텔레비전 카메라는 진실을 전하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시위 현장에서 할머니가 쓰러진 화면 뒤에 기동대원이 곤봉을 치켜들고 있는 화면이이어지면 가혹하다‘는 의미가 전달된다. 이것이 시청자가 텔레비전방송국의 편집 방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헤드라인은 내용 그 자체가 아니다. 그에 적합한 내용의 특징을이끌어 내는 깃발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 깃발 밑에 ‘이러한 정보가있다‘는 표지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시부야의 맛있는 음식 정보‘나 ‘주름살을제거하는 화장품을 알려 드립니다‘라는 글귀에 끌려 잡지와 주간지를 산다 해도 거기에 반드시 자신이 찾는 맛있는 음식 정보나 미용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 정보라는 것이 가게 사진과 두세 가지의 요리 사진에 지나지 않아 깊이 있는 정보를 전혀 얻을 수없는 경우도 있다. 독자들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깃발(표지) 밑에 있는 정보 파일을 열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즉 배신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전에 이미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저, 즉 사용자에게는 그것이 먼저 타이틀로, 그리고 헤드라인으로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으면 흔히 스포츠 신문이 그러하듯이 타이틀이나 헤드라인을 어이없이 숨기거나 패러디식 조어를 사용해 눈길을 끌려고 한다.
신문이나 잡지, 텔레비전 등의 미디어 세계에서만 편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이나 만화, 드라마는 물론, 기획서나 영업 보고서, 이벤트나 도시 계획, 정책에도 딱 들어맞는다. 오히려 바로 이런 영역에서 편집 기법이 활용되어야 한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보고서나 제안서는 ‘편집력이 부족한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편집력은 기자나 편집자, 텔레비전 디렉터 등이 지니고 있는 능력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영화 감독이든, 럭비팀 감독이든, 영업부장이든, 기술 개발 부장이든, 요리사들,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이든 누구나 다 지니고 있는 능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