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회가 바야흐로 근대화를 시작하려는 즈음 개인과 사회의 ‘접점‘
(接點, conjunction)을 전통적 윤리를 바탕으로 천착하려 했던 전형적인 눈과정신을 박수근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위대한 작가의 진실이 미술시장에서치솟는 경매가격과는 반대로 아직 이론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박수근은 근대화 여명기의 개인과 사회가 최후의 접점을 이루었던 시기의한국미술의 이론을 논의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이러한 평가가지금까지 부진했던 것은 우리의 현대미술이론의 부재 때문인 것은 말할 것도없지만, 좀더 직접적인 이유는 그의 작품에 내재해 있는 근대화 여명기의 전형으로서 그의 눈과 정신을 읽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회화로서의 평면성과 화면의 지지체를 일체화하고자 했다는 것이다그는 그리고자 하는 사물의 실제보다는 화면이라는 일차적 필요충분조건을 것해서 실재에 대해 사유하고 제한했다. 둘째는 평면상에서의 실재의 존재을 정의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평면이라는 조건과 실재의 조건을 다룸에 있어서 그는 일관된 행보를 보여주었다. 그의 눈은 사물에서 촉발되는 존재의 근원을 진솔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정신을 통해서 평면으로 정리하고자 했다.

그는 사물의 존재의 신비를 그 자신만의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자신과 사회를 잇는 접점에 설정하고자 했다. 그는 선한 세계라는 ‘초개인적 · 윤리적 수준에 접점을 설정하고 이 지점에서 작가 자신의 눈과 마음이사회의 하나라는 것을 확인시켰다. 이러한 태도는 1970년대 중반 이후 근대화전성기의 도래와 더불어 개인과 사회의 접점이 해체되기 이전의, 한국 근대화의 여명기가 갖는 눈과 정신이 무엇인지를 확인시킨다.

그의 작품들을 대하면 먼저 그의 화면에서 방사하는 특이한 ‘세계‘를 볼 수있다. 그의 세계에는 무엇보다 고목과 아낙이 있다. 싱싱한 나무가 아니라, 겨우 몇 개의 가지와 잎사귀를 간직한 고목이 있고, 절구질을 하거나 텅 빈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이 있다. 주제의 품목들은 모두 그가 살았던 시절의 주변세계의 이모저모이지만, 작품을 보는 순간 이러한 사실은 망각된다. 그 대신그가 그리는 주제들은 박수근의 ‘세계‘ 안에서 특유한 비전과 독자적인 생명을 갖고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들은 투명하도록 해맑은, 그러나 불투명한 대기 속에서 영적 사물로서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한결같이평면에 응결되거나 잠입하거나 무시간적 절대의 안식 속에서 휴식하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하나의 의문이 일어난다. 박수근의 회화 이미지를 그 최전선에서 받치고 있는 소재들은 어떻게 고목과 아낙, 나아가서는 초가와 절구질, 빨래터와 시장같은 가난의 품목으로 일관되고 있는가? 바꾸어 말하면, 작가는 왜 건강한 젊은이와 잘 차려입은 여인, 싱싱한 나무와 숲, 도시와 빌딩을 묘사하지 않는가?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이미지가 드러내는 정신적인 면과 지향성이다. 다시 말해, 그가 보고 생각하는 이상세계다. 그가 그리는 ‘세계‘란 그가 세상을 살면서 체험한 인생살이의 전부만은 아니다. 그의 이미지에는 그의 삶의이모저모가 용해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응축되어 있는 장소로서의 구실을 한다. 이름 없는 아낙과 형상조차 갖추지 못한고목은 철없는 손자와 놀고 있는 황혼기의 촌로와 대구(對句)를 이룬다. 이것들은 그가 그리고자 하는 세계의 메신저들임에 틀림없지만, 한결같이 그의 이미지들에 지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이를테면 선한 세계의 품목들이다.

‘선한 세계의 품목‘이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이것들은 사실상 그의 세계를 이해시키는 매개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을 통해서 박수근이 그리는 이미지에서 선한 세계의 표정을 읽는다. 선은 이미지가 아니지만 작가는 그가 그리는 세계가 선을 지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가 그리는 세계란 선을위해서 마련한 처소이다.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그의 평생의 종교적 이해와함께 성(聖)과 진리의 격률率)이 그의 이미지에 함의되어 있다. 그가 보여주는 선한 세계의 이미지는 ‘마음의 가난은 선의 표정이므로 아름답다‘는 의미를 내재한다.

청빈한 세계는 곧 선함을 밝히는 세계다. 그가 그리는 선한 세계의 속성인가냘픔, 연약, 노경 그리고 청빈은 물리적 · 생리적 · 경제적 약점이나 결핍을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지고의 세계가 필연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할 근본상을 뜻한다. 박수근은 이것들을 드러냄으로써 그의 세계를 참답게 나타낼수 있다는 신념을 보인다.

이를 다룰 수 있는 단서 하나가 있다. 박수근의 이미지는 ‘지각‘에 의거하지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미지들은 지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바깥의 세계를세세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나하나의 이미지들은 선조 색채 베리나에이션에 의해 겨우 차별화된다. 그의 이미지는 지가보다는 기억심상이나 직관심상에 더 근접해 있다. 그의 기억은 우리에게 이미지를 단순화해서 무엇인가를 환기한다. 그가 시도하는 이미지의 단순화는 작가의 정신과 세계를 연관시킴으로써만 그 연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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