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과격파의 눈에는 사사건건 프로테스탄트와 타협하려 드는 카트린과 앙리 3세의 신앙이 수상쩍게 보였을 테고, 그런 왕이 이단자인왕위계승 예정자와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배신행위였다.
정통 카톨릭을 자처하는 자들의 성난 목소리는 앙주 공작의 장례식 당일부터 커다란 물결처럼 각 도시에서 일어났고, 그중에서도 왕도(王인 파리 시가 가장 과격했다.
이 분노의 목소리는 하나의 구심점을 필요로 했다. 반대쪽의 중심이왕실이라면, 분노의 구심력은 귀즈 공작을 요구했다. 설령 키즈 공작이왕실과 가장 가까운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카톨릭 동맹측과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려 해도 그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이미 영웅이었다. 그리고 16세기에 영웅이란 피와 칼의 동의어였다.
또다시 반란 · 분열 · 유혈 · 광기와 광신. 내전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