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을 새긴 뺏조각과 마찬가지로, 동굴벽화 또한 자연계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기억을 돕는 장치로 이용되어 그런 정보를 쉽게 되살려 내는 데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존 피퍼는 이 그람들을 일컬어 ‘부족의 백과사전‘ 이라고까지 했다. 나 역시 이 미술작품에 포함된 많은 동물의 형상이 마음속에 저장된 자연계에 대한 정보를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예를 들면,
많은 동물이 그려진 방식이 그들의 움직임과 행동에 대한 정보가 획득된 방식을 직접적으로 지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그림에서는 동물의 전체 모습이 측면도로 그려진 반면, 마치 자연환경 속에서나 아이들에게 발자국을 쉽게 기억하고 그 자취를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가르치려는 것처럼, 발굽이 평면도로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려진 대상도 다가올 환경적 사건들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는 동물들이선택되었다. 새의 그림은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동성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은 오리와 기러기 종류가 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빙하로 덮인 환경에서 사는 현대의 수렵인들은 매년 이런 새들이 찾아오고 떠나는 것을 철저하게 살핀다. 이런 정보가 겨울의 혹한이나 봄의 해빙기가언제쯤 찾아올 것인가에 대한 단서를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