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독일에서는 섬멸전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풍조가 유행했다.
클라우제비츠는 종종 섬멸전 사상에 깊이 통달하여 학설의 핵심을 섬멸전에 둔 섬멸전 사상의 주창자로서 찬양받았다. 정치적 제약과 현실의전쟁에 대한 클라우제비츠의 학설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그리고 제한적전쟁 목표와 제한적 형태의 전쟁은 시대착오적인 개념으로 서술되었다.
이 점에 있어서 골츠와 슐리펜은 프랑스의 콜랭과 의견이 일치했다. 수많은 저술가들은 새롭게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해설하면서 공통적으로 섬멸선의 개념을 강조했다. 1919~1920년 독일 육군총사령관을 지낸 발터 라인하르트Walther Rein-hardt 장군은 수많은 저술가들이 "클라우제비츠의 학설에서 섬멸이 강조된 부분만을 인용한다고 지적했다. 라인하르트 장군의 지적은 슐리펜 계획을 입안할 때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될 때까지 정치적 관점이 아니라 군사적 관점을 우위에 둔 군사적 성향이 지배적이었음을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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