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후야오방은 지식인에 대해 시종일관 관대한 태도와 정책을 취했다. 단적으로 그는 1978~1980년의 ‘베이징의 봄‘, 1981년의 짝사랑」 사건‘, 1983년의 ‘정신오염 제거‘, 1985~1986년의 학생운동에서 항상 대화와 인도를 통한 평화적인 문제 해결을 주장했다. 반면 보수파와 혁명원로, 특히 덩샤오핑은 그와 다른 정책을 고수했다. 덩샤오핑은 자신이 주도했던 1957년의 반우파 투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래서 그때 방식과 유사한, 나아가 문혁 시기에사용했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비판운동을 통해 지식인을 확실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덩의 관점에서 보면, 후야오방은 총서기로서 마땅히 견지해야 하는 굳건한 당성(性)을 망각하고, 정치적 위험 앞에서 유약하고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인 실망스런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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