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황제의 죽음은 진나라의 종말이었고 몽염의 죽음은 그대로 장성수축의 마지막이었다. 다만 ‘중국은 하나‘ 라는 테제와 통일성과 미증유성을 추구하여 그 영역을 북쪽으로 밀어 올리고 장성선으로 영토를 구분하려 했던 진나라의 자세는 이로부터 후대의 중국에 이르기까지 각 왕조의 모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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