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북한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게 된 또 한 가지 이유는 북한의 무책임한 위장전술에 한 번 쐐기를 박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북한은 우리가 자기네 제의를 걷어차버릴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갖고 상투적으로 하던 작태를 다시 한 번 펼쳐 보인 것인데, 역으로 그 의표를 찌름으로써 다시는 국제사회를 향한 장난질을 할 수 없게 만들자는 것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에 대고 공개적으로 수재물자 지원 제의를 한 만큼우리가 공개적으로 수락 의사를 밝히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라도 주지않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준비도 없이 허풍을 떨다가 허둥댈 것이 뻔한데,
이번 기회에 나쁜 버릇을 고쳐놓을 필요가 있었다. 짧은 기간에 그 많은물자를 대려면 북한 당국은 물론 많은 북한동포들이 고생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포애‘를 팔아먹으며 장난질치는 북한 당국자들을 한 번은 혼을 내줘야 할 일이었다. 나는 9월 11일 노신영 안기부장에게 북측 제의를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한 데이어 다음날에는 늦어도 9월 말까지 물자를 인도해주도록 북측에 요구하라는 등 물자의 처리와 홍보, 보안 대책에 관해 구체적인 지침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