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군의 선박 손실이 가장 심각하던 시기에 토치 작전이 실시되었다는 사실은 연합군의 전략에 있어 해상 운송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토치 작전을 실시한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지중해를 경유하는 해상보급로를 완성하여 그동안 방대한 시간과 연료를 소모해 온 희망봉 경유 항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토치 작전으로 인해 7월과 8월, 그리고 9월과 10월에 소련에 대한 물자 수송이지연된 사례를 이미 살펴보았다. 8장에서도 재차 다루겠지만, 수송선 부족으로토치 작전의 규모가 축소된 결과 연합군은 예정대로 작전 초기부터 튀니지를 장악할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독일은 1943년 5월까지 북아프리카에서 버틸 수있었고, 북서 유럽에 대한 연합군의 침공 작전도 1944년까지 연기되었다. 선박 손실이 건조량을 능가하는 상황이 지속된 결과 1943년 1월에 미국과 영국이 개최한 카사블랑카 회담에서도 U보트 대응이 최우선 과제로 다뤄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한다면 연합군의 해상수송력은 꾸준히 줄어들고, 결국 서방 연합군을 마비시킬 것이 분명했다. 설령 영국의 존속을 보장할 수 있다 해도 미 육군을 영국까지 수송하고 보급하지 못한다면 독일을 멸망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