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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인가, 국가인가? - 신라 내물왕 이전 역사에 답이 있다 ㅣ 서강인문정신 12
이종욱 지음 / 소나무 / 2006년 12월
평점 :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이 심해지고 있다. 한국 고대사에 대한 역사왜곡이 중국 정부와 일본정부의 노골적인 지원을 받으며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이에 맞서는 학자들은 일반 사학계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이는 우리 인문학 위기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독자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게 제대로된 논쟁한번 걸지 못하는 우리의 정통 사학자들이 부끄러울 뿐이다.
민족인가 국가인가를 쓴 서강대 이종욱 교수도 비주류로 분류되는 학자이다. 그는 한국 고대사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는 학자이기도 하다.
동북공정에 맞서는 흐름을 살펴보면 대충 다음과 같은 흐름이 있다.
1) 고조선 - 고구려 - 발해 - 금 - 청 등 만주를 지배한 국가들의 다양한 민족들 즉 말갈, 여진, 만주족 등은 넓게 보면 다 우리 민족이다.
2) 만주의 역사는 한반도나 중국과는 동떨어진 제3의 역사로 간주해야 한다.
엄격히 분리하자면 이 책은 2번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엄밀히 서구에서도 17세기 국민국가 등장이후 대두된 개념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비판없이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를 만들어 놓고 이 틀에서 과거 역사를 재단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구려, 백제, 신라 중 당나라를 끌어들여 통일한 신라를 두고 "외세를 끌어들여 민족을 배반한 배신자"로 취급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같은 민족으로 생각했을까?
신라입장에서는 자신의 왕국을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 외부 세력을 통해 자신의 왕국을 지키고 통일을 이루었을 뿐이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없이 단군의 후손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 주변에 단군의 직계 후손은 없다. 또 고구려, 백제의 후손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반면에, 신라의 왕족이었던 박, 석, 김 씨와 6부를 이루었던 이씨, 최씨, 정씨, 설씨, 손씨, 배씨는 현재 우리 민족의 절반을 넘는다.
구체적인 직계 조상이 있음에도 우리는 추상적인 '단군의 후손'이라는 단일민족론의 허구에 빠져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부제인 "내물왕 이전 역사에 답이 있다"라는 내용처럼 우리 민족의 근간은 신라를 건국했던 왕족과 6부 종족세력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 고대사가 이렇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이유를 일본의 식민사학과 이 틀을 그대로 받아들인 이병도, 손진태들이 모태가 된 서울대 관학파에서 찾고 있다.
이병도, 손진태는 와세다 대학 출신들로 식민사학을 세운 쓰다 소기치의 제자들이다.
쓰다 소기치는 한국 고대사를 정리하면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근거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삼국의 초기 역사를 부정했다. 즉 태조대왕 이전의 고구려, 근초고왕 이전의 백제역사, 내물왕 이전의 신라 역사는 후대에 지어진 이야기로 규정한 것이다.
그가 이렇게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부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제 식민지시기,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한 국민국가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천황을 중심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며, 임나 일본부설을 정설로 만들기 위해서는 3세기 이전까지 한반도를 힘의 공백 상태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 따르면 신라는 여러번 왜병을 맞아 물리친 기록이 나온다. 또한 왜국의 위치는 한반도 남부 가야땅이 아닌(임나 일본부가 아닌) 동남해안 바다건너로 기록되어 있다.
쓰다 소기치는 이 기록을 부정하기 위해 삼국사기의 초기기록 자체를 모두 부정한 것이다.
그 근거로 가져다 쓴 것이 3세기에 기록된 "삼국지 위지 동이전 - 백제는 변변한 성곽조차 갖추지 못한 부족국가였다" 이다.
해방후 우리 관학파는 이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고대사 자체가 완전히 꼬여버린 것이다.
3세기까지 부족국가에 지나지 않았던 삼국을 근거로 어찌 만주 땅이 우리 땅이라는 주장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으며, 일본의 임나 일본부설을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 있었겠는가?
이 관학파들의 오류로 가장 가슴이 아픈 결과를 가져온 것이 풍납토성이다.
이제서야 고고학 발굴을 통해서 풍납토성이 백제의 위례성이었을 가능성이 높게 평가되고 있지만 이병도의 "풍납토성은 백제의 사성(蛇城)"이라는 한마디로 70년대 풍납토성은 민간에 불하되어 개발되고 말았다.
지금 풍납토성을 다시 복원하기 위해서는 수조원의 돈이 들 것이다. 또 서울정도 600년 행사를 하기 이전에 기원전 18년에 위례성이 백제의 수도가 되었다는 삼국사기 기록을 따른다면, 1982년에 이미 서울은 2,0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풍납토성의 고고학 발굴결과, 풍납토성의 축조시기는 기원전 1, 2세기에 시작되어 적어도 기원후 200년에는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밝혀졌다.
기원전 18년에 백제가 이미 왕국을 형성하여 경기도 일대를 장악했다는 삼국사기 기록의 신빙성을 더해주는 발굴내용이다.
풍납토성의 축조를 위해서는 연인원 105만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3세기까지 성곽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부족국가 백제'가 축조할 수 있는 수준의 성곽이 아닌 것이다.
신라 역시도 삼국사기에 기록된 기원전 57년 박혁거세가 세웠다는 신화가 '경주 나정'의 발굴을 통해서 차츰 사실성을 얻어가고 있다.
이렇게 구체적인 직계 조상과 고고학적인 성과물들을 나두고 우리는 어느 새 '강한민족의 후손'이라는 신식민 사학자들이 잘못 이식한 이데올로기에 빠져 고구려 후손이라 하고, 말갈족이 세운 발해를 우리 민족의 역사로 갖다 붙이려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가 물론 한국사의 입장에서 한국의 역사 형성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고 이를 인정할 수는 있지만, 우리 민족사로 주장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민족사와 국가사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 직계 종족은 엄연히 신라를 세운 부족들로 지금까지 엄연히 우리에게 혈족으로 내려오고 있다.
가야 세력이었던 김해 김씨도 김유신을 통해 신라에서 중흥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우리 고령신가도 대가야의 호족이었지만 신라에 흡수되어 지금까지 내려와서 혈족을 전했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성씨들이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 주변을 보면 삼국을 근거로 우리나라 자생적인 성씨들이 우리 민족의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아뭏튼 한국 고대사를 해석할 수 있는 또하나의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단일민족'의 허구 이데올로기를 벗어버릴 수 있는 소중한 시각이다.
반도의 위축된 역사를 지향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역사가 순수하게 사실을 통해 과거와 현실을 재구성한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상당히 과학적인 시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신라가 북방계 이주민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고조선 이주민들이 세운 나라라는 사실로 연결 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뭏튼 관학파들의 죄가 너무 크다.
역사에 정말 공짜는 없는 듯하다.
한글은 주시경 선생과 같은 분이 조선어학회를 통해 목숨을 걸고 한글의 체계를 세워서 지금까지 찬란한 민족의 자랑으로 이어져 나가고 있지만,
조선사 편수회에 있으며 일본 식민사학을 벗어 던지지 못한 채, 그대로 받아들인 역사학자들의 원죄는 지금까지도 남아 우리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