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에는 작가의 정신흐름을 쫓아가는 것이 다소 힘들었다. 그런데 이 책은 성폭행 이후 작가가 살아낸 삶이다. 그것이 읽는 사람이 편하도록 정갈하게 정돈될 수는 없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부턴 그녀의 고백을 조금 차분한 마음으로 들었다.
마치 지금 겪은 것 같은 이 고백은, 피해자가 어떠한 내면으로 살아가게 되는지 가늠하게 해준다. 읽는 사람에게 버겁다면, 살아낸 사람은 어땠을까. 피해자에게 그 사건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12살에 겪은 일이 40대가 된 ‘아직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방아쇠가 되어 플래시백에 시달리’고 있다. 가해자는 이 일이 있기 전의 삶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는 피해자에게 바위를 깨기 위해 던져지는 계란이 되어 계속해서 속죄하고 사과해야만 할 것이다. 바위가 깨질 때까지.
또한 각종 저서와 에세이, 신문기사를 통해 세상에는 밝혔던 고백을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본인이 직접 꺼내지 못했던 것을 통해 성범죄 재판에서 가해자의 논리로 활용되는 ‘통상적인 피해자의 행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가족이나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 때로는 형사재판에서 공격 포인트가 된다. 그러나 책으로 자신의 경험을 출판하면서도 가족에게는 밝히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은 ‘통상적인 피해자의 행동’이 허구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 같다.
솔직하기란 용기가 필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너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심장을 펼쳐 보인 작가의 고백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 다행히도 작가는 아주 천천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이야기 해 준다. 그것이 치유되고 있다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여전히 그 일은 작가와 함께 하고 있다. 그렇지만 작가의 삶을 더 이상 망칠 수 없길 바라본다.
아, 그리고 몸에 관한 선입견이 얼마나 우리 모두를 사로잡고 있는지에 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나도 여성으로서 몸에 관한 수많은 스스로의 압박이 있다. 그런데 이 압박은 내 내면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외부의 욕망이다. 우리 사회가 몸과 인격을 동일시하고, ‘뚱뚱한 몸으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당연히 자기혐오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태세를 갖추고 있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과 함께 개선을 위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겠단 다짐도 해 보았다.
아주 특별한 용기라는 책이 작가의 고등학교 때 나와 있었단 사실(p.93)도 흥미로웠다. 나는 최근에 그 책을 구입했다. 이때 이후 생존자의 트라우마에 대한 대체 가능한 책은 없는 걸까?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친구는 비행기에서 먹으라고 감자칩 한 봉지를 사주겠다고 했었지만 나는 거부했다. 내가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은 공공장소에서 그런 음식 먹는 거 아니야.” 그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한 말 중에서 가장 솔직한 말이었다. 우리 우정의 깊이 덕분에 그런 고백까지 할 수 있었고, 그 다음에는 내가 이런 끔찍한 서사에 나를 맞추고 내면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졌고, 내가 내 몸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졌고, 너무나 많은 것을 부정하고 살면서도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듯 수많은 것을 부정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p. 172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혐오에 힘없이 굴복하며 살았다. ... 그 모든 발전 없는 자기혐오에 지쳐버렸고, 내가 나를 싫어했던 이유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나 자신을 싫어하는 걸 당연한 일로 여길 거라고 추측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뚱뚱한 몸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당연히 자기혐오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듯한 세상이 지긋지긋해졌다.
...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진짜 문제는 내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운이 없는 날에는, 내 인격, 즉 나라는 사람의 본질과 내 몸을 어떻게 분리해야 하는지 잊어버린다. 이 세상의 잔인함으로부터 나를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p. 174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면 사람들은 격려와 조언을 해주는데 사실 나는 둘 다 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 나는 그냥 괴롭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저 공감과 위로를 바랐다. p.188
내 문신에 뭔가 심오한 뜻이 담겼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 그저 내 몸에 (내 몸을 만들어가는 데) 내 힘을 행사하고 싶었다. ... 사람들은 내 문신에 특별한 의미나 의도가 있는지 묻지만 나는 그럴듯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아니, 그보다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할 만한 쉽고 간단한 대답이 없다.
... 문신을 하는 행위 그 자체를 사랑했다. 내게 의미 있는 건 디자인보다는 내 몸에 표시를 하는 체험 과정이었다. ... 문신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 내가 내 몸에 한, 내가 목청껏 동의한다고 외치는 내 선택이라는 점이다. 나는 이렇게 내 몸에 표시를 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내 몸의 주인이 된다. p.207
문신을 하는 동안 고통은 계속되고 가끔은 몇 시간이나 이어지지만, 그 고통은 내가 그동안 고통이라고 느껴왔던 것들과는 다른 종류의 고통이다. ... 하지만 문신을 할 때의 통증은 당신이 어쩔 수 없이 항복해야만 하는 무엇으로, 일단 시작하면 다시 돌이킬 수 없고 그랬다가는 미완성의 자국만 영원히 남을 것이다. 나는 이 상황의 돌이킬 수 없음, 취소 불가능성에 끌린다. 당신은 고통에 몸을 맡겨야 한다. 당신 스스로 이 고통을 선택했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당신의 몸이 달라진다. 당신의 몸이 더 당신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 내가 잉크로 내 몸에 자국을 남길 때, 그 일을 마쳤을 때, 나는 내 것이 아니었던 내 몸의 일부를 돌려받는다. 이는 매우 느리고 긴 과정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내 몸은 나를 지키는 요새가 된다. p.211
나는 뚱뚱하지 않았고 그러다 날 뚱뚱하게 만들었다. 나의 몸이 거대하고 아무것도 뚫을 수 없는 커다란 덩어리가 되기를 바랐다. 나는 다른 여자애들과 같지 않다고, 나에게 말했다. 먹고 싶은 모든 것을 먹었고 다른 여자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까지 먹어치웠다. 너무나 자유로웠다. 내가 만들어낸 감옥 안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 우리는 상실에 아파하고, 상실의 아픔은 나를 망쳐버렸다. 나는 비난할 무언가가, 비난할 누군가가 필요했기에 나 자신을 비난했다. p.221
사람이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를 때가 많다. p.274
나는 죽었었고 그래서 아무 상관 없었다. p.275
내가 맺게 될 인간관계는 이미 방향이 정해져버렸다. ... 극히 작은 애정에도 고마워하는 처지에서부터 시작했다. p.275
나는 우리의 슬픈 이야기들에 진력이 났다. 슬픈 이야기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이런 이야기들을 갖고 있따는 것과 그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 나를 지치게 만든다. p.276
나의 슬픈 이야기들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p.280
그날 일어난 일은 가족과 이야기할 일은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내게 너무나 큰 일이라 가족들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기억들은 지금까지도 너무 생생하다. 그 일의 결과는 아직도 나와 함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족에게만은 비밀이었다. p.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