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좋은 동시 2023
안도현 외 지음, 홍성지 그림 / 상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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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좋은 동시 2023>에서 가장 좋은 동시를 꼽자면 내 기준으로 강기원 시인의 '글꼴의 역사'이다. 제일 첫 번째로 실렸는데 첫 번째로 실려서가 아니라 이렇게 재미난 시라서 첫 번째로 실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서 작업할 때 흔히 쓰는 ‘고딕체’, ‘궁서체’, ‘매직체’가 등장하고 가끔 글자를 꾸미고 싶을 때 썼던 ‘개미똥구멍체’도 소재로 쓰였다. 그리고 나는 본 적 없지만 ‘백두체’, ‘튼튼체’, ‘샤넬체’, ‘즐거운 이야기체’, ‘삐딱이 꽃게체’도 시의 소재로 쓰여 시를 읽는 독자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글꼴의 역사가 곧 ‘글꼴’이라는 한 어린이의 성장 스토리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이렇게 참신한 발상을 할 수 있을까? 탁월한 시인 만이 할 수 있는 언어 감각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다음으로 좋았던 시는 윤동미 시인의 ‘빈자리’이다. 눈 쌓인 주차장에 차 두 대만 빠진 자리를 ‘꼭 지우 앞니 같다’라고 표현한 점이 무척 재밌다. 눈 내리는 날을 좋아했던 사람도 어느새 운전자가 되면 눈이 온다는 게 썩 반갑지만은 않다. 하얗게 눈이 쌓인 세상이 걱정스럽게 느껴질 만도 한 데 이 시를 보면 익살맞은 웃음이 난다. 눈 내린 세상이 꼭 개구쟁이 조카의 앞니가 빠진 것처럼 느껴져서 불안한 마음이 유쾌함으로 바뀔 것 같다. 꼭 어른 독자가 아니더라도 동시의 주 독자인 어린이들도 얼마든지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리라 본다. 아빠의 운전이 걱정되던 순간도 어느새 앞니 빠진 친구 얼굴처럼 보여 조금은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대일 시인의 <중력>이란 시도 참 재밌었다. 아침에 눈 뜨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침대에 딱 달라붙고 싶은 심정을 ‘침대 행성의 중력’이라고 표현했다. 나도 그런 경우가 많기에 더 시가 공감이 가고 참신하다고 느꼈다. 로켓 속도로 탈출하고 싶던 마음도 침대 행성의 중력 앞에서는 어찌할 수가 없다. 내면에서는 화산 폭발과 지진이 일어나는 데 이것을 부추기는 건 행성 주위를 공전하던 ‘엄마’가 등장할 때이다. 단순하게 엄마와 아이의 늦잠 투정으로 묘사하면 심심했을 시가 중력과 행성, 로켓에 은유적으로 대입하니깐 생생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이화주 시인의 ‘귤’이라는 시도 참 좋았다. 귤은 동그랗고 주황빛을 띠고 있다. 이 시 역시 앞선 ‘중력’이라는 시처럼 귤을 단순히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귤이 '달님을 닮았다'고 표현했다. 달님을 닮은 귤을 맛본 아이 입 안에서는 ‘향기로운 달빛 놀이’가 시작되고 자신이 달이란 것을 알아봐 준 것에 감격한 귤은 스스로 폭죽을 터뜨린다. 시 한 편에서 디오니소스의 축제가 펼쳐진 것처럼 흥겨움이 저절로 묻어났다. 시를 읽고 있는 것만으로 귤과 아이가 느꼈을 황홀경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시란 이렇게 쓰는 거구나 싶다.     


나도 종종 시를 쓴다. <올해의 좋은 동시 2023>은 순전히 다른 시인의 시 세계와 시작 능력을 훔쳐보기 위해 읽게 된 이유도 없지 않다. 그리고 이 시집을 한 권 읽고 나서 나는 정말 아직 멀었구나 하는 걸 절감했다. 올해의 좋은 동시로 꼽힌 시들은 괜히 꼽힌 게 아니라는 게 절실히 느껴졌다. 탁월한 비유, 생생한 묘사, 다채로운 표현, 독특한 시 세계 등이 일상을 시인만의 시선으로 포착하여 압축적으로 표현해 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을 수 있었다.     


비록 나는 아직 초짜시인지만 멋진 시인들의 시를 읽고 함께 나누며 동시란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담은 동시라는 형식과 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진실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더 나 자신을 갈고닦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든다. 동시를 쓴다는 건, 그만큼 절로 아이다워져야 하고 순수해야 하고, 세상을 맑은 눈으로 바라봐야 가능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해의 좋은 동시를 뽑아준 권영상, 김제곤, 안도현, 유강희, 이안 시인과 평론가 분들께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좋은 동시가 계속해서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멋진 시를 써준 시인 분들께도 응원의 인사를 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출판그룹 상상에서 서평단에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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