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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 - 셰익스피어에서 헤밍웨이까지 작품으로 읽는 문학 독법
해럴드 블룸 지음, 윤병우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오래된 책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대학 도서관의 한쪽 구석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냥 책이 좋고, 책 냄새가 좋고, 책 속에 파묻혀 있는 느낌이 좋았다. 내 안에 엄청나게 많은 책들로 가득한 거대한 도서관을 세우고 싶었다. 삶의 길. 어느 모퉁이에서 필요하면 언제든 꺼내어 들 수 있도록...... 읽고 싶은 책도, 읽어야 할 책도 많았지만 늘 시간에 쫓겨야 했다. 여전히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치여 글자에 굶주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읽어대는 나에게 이 책 '독서의 기술'의 저자 해럴드 블룸은 "왜 읽어야 하는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그 답을 던진다.
해럴드 블룸은 인문학자이자 문학 비평가로써 예일 대학의 인문학 교수이다. (처음 표지에 나온, 뭔가를 읽고있는 여인의 모습을 보고 나는 너무 단순하게도 이 책의 저자가 여자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남자다.) 총 5부로 나눠 1부에서는 단편소설을, 2부에서는 시를, 3부에서는 장편소설을 4부에서는 희곡을, 5부에서는 미국의 장편소설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선택한 책들을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읽는 동안 내내 "역시 교수님이구나~!"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가 제시한 책들은 내가 읽고 싶은 책 목록들을 모두 뒤로 밀어두고 그 목록 가장 우위에 자리를 차지할 만큼 그의 글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는 한 작가의 각각 다른 작품 속의 두 인물을 비교하거나, 두 작가의 다른 작품 속의 두 인물 비교하거나, 한 작가의 초판과 개정판을 비교하거나 하는 식으로 여러 작품 속의 인물들을 비교 대조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이 책속에는 내가 아는 작가도 모르는 작가도, 아는 작품도 모르는 작품도 등장하지만 그것들을 서로 비교하면 이어주기에 전혀 모르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이야기에 비춰 "아 이 인물은 이런이런 인물이겠구나."하고 예측할 수 있게 한다.
단편보다는 시나 장편소설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단편에 소개된 작가와 작품들은 모르는게 많았지만 어떤 단편들이 나에게 큰 의미를 가져다 줄지 그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블룸은 시는 큰 소리로 천천히 낭독하며 읽으라며 여러차례 이야기한다. 시를 소리내어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큰 감동을 알기에 몹시 공감했다. 장편소설부분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해 세르반테스,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프루스트 등 대부분 아는 작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쓴 돈키호테, 위대한 유산, 죄와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의산 등 내가 읽었던 책들이 나와서 훨씬 잘 이해하고 공감했는데, 나 혼자서 독서를 하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게 내가 내린 결론과 같을까?'하는 의문이 들다가도 마땅히 토론상대가 없어서 덮어두어야했던 생각들이 자유를 찾았다고나 할까! 여러 인물들을 비교하며 작가에 대해,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는 블룸의 글은 훌륭한 토론상대가 되어주었다. 이 책으로 인해 그동안 마음 한구석에 잘 이해되지 않은 막연한 생각으로 자리하고 있던 많은 작품들이, 인물들이 새롭게 되살아났다.
블룸이 말하는 우리가 독서를 하는 이유를 3가지만 말해보면 첫째, "다른 방식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완전하고 더 기묘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서"이고, 둘째,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정신에 대해 더 잘 알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고, 셋째,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인 검은 무력감으로부터 우리를 치유하기 위해서"이다.
또 블룸은 "애정을 가지고, 질투심"을 가지고 독서를 하고, "다시 읽을 가치가 있는 작품을 다시 읽어 보면, 당신신의 영혼을 살찌우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게 될 것" 이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들을 다 읽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읽으면 훨씬 풍성한 가르침을 얻을수 있을 것 같다. 안 읽은 책도 읽고, 읽었던 책도 다시보게 하고, '왜',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알려준 진정한 독서 기술, 고수의 비법을 담고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