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의 루브르
박제 지음 / 이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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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de a part 봤지?

(국외자들band of outsiders 1964년, 고다르)




그들 셋이서 루브르 박물관을 통과하면서 경주하는 장면말야.




그들은 9분 45초의 세계 기록을 가지고 있어

 

우리가 그 기록을 깨는거야!"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다. 결국 기록을 깨고 9분 17초만에 루브르를 가로지르던 그들의 모습이 마음깊이 각인되어 언젠가 나도 그들의 기록을 깨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후 네시의 루브르"에는 루브르라는 똑같은 장소를 이삼십년간에 걸쳐 서서이 걷고 있는 지은이 박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루브르. 어떤이는 전속력으로 달려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관광차 들려 유명한 그림들만 쓱~ 보고 지나치기도 하지만 어쩌면 어떤이에게는 온생애를 두고 둘러보아야 할 만큼 많은 보물로 가득 차 있는 곳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제목인 "오후 네 시의 루브르"에서 루브르를 수식하는 "오후 네 시"는 칸트의 일화에서 따온 것이다. 평생을 작은 고향마을에서 떠나본 적이 없다는 칸트. 동네사람들이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시침을 맞출 정도로 칸트는 오후 네시만 되면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길을 산책했다고 한다. 지은이 박제에게 루브르는 "오후 네 시를 가르키는 행복한 시계와 같은 존재"다.

칸트가 동네를 산책하듯, 지은이는 루브르를 걸으며 신선한 아이디어를 길어 올리고, 마음의 쉼을 얻으며, 정신을 맑게 한다. 프랑스 르아브르 에콜 데 보자르를 졸업했고, 이제 루브르가 박물관을 넘어 일상의 소중한 공간이 되어버렸다는 지은이 박제가 "내 인생의 보물창고"라 말하는 루브르로 들어가 본다.

 

 소장한 작품은 모두 44만여점이고, 전시된 작품 수만 대략 3만 5천 점에 이르며 지금도 지속적으로 새로운 미술품들을 수집하고 있다는 루브르의 작품들 중 지은이가 엄선한 38개의 작품을 이 책은 담고 있다.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으며 1장 잊을 수 없는 얼굴을 그리다에는 초상화 일곱점을, 2장 거친 세상을 그리다에는 미치광이, 돈놀이꾼, 사기도박꾼, 점쟁이, 술 마시는 여자, 학살 장면 등 세상의 어두운 면을 그린 그림 6점을, 3장 바깥 세상을 그리다에는 아름다운 풍경화 8점을, 4장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을 그리다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의 누드화 8점을, 5장 영원한 어머니의 슬픈 아들을 그리다에는 성경의 이야기를 주제로한 성화 9점을 소개하고 있다.

 

 각 작품별로 화가에 대한 소개와 작품 소개를 자세하게 해주고 있는데, 실체적 진실과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수수께끼들, 지은이 자신의 견해를 자연스럽게 융합시켜 독자가 알기쉽게 전달해 준다. 뿐만 아니라 화가들의 다른 작품은 물론, 비교하면서 볼 수 있는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루브르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미술관에 있는 것들도 수록하고 있어서 대표적인 작품은 38개지만 훨씬 다양한 작품을 만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수십년동안 루브르를 걸으며 그 곳에 걸려있는 작품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집중해서 읽고 있노라면 어느덧 작품속으로 빨려들어가 그림의 일부가 되는 기분이 들곤 한다. 아무래도 카메라로 걸러지고 축소되어 이 작은 책 안에 들어와 앉아 있는 작품들이라 실제로 보는거랑은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이 책 안에 담긴 작품을 보고서도 이정도의 감동이 이는 걸 보면 실제로 루브르에 가서 작품들을 감상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조차 되질 않는다. 하루 빨리 루브르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관광지의 일부로 루브르에 들어가 "모나리자"처럼 유명한 그림 몇점만 둘러보고 나올 바에야 차라리 이 책을 한번 읽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화가와 화가의 작품세계에 대해 제대로 알고, 그들이 그림을 통해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작품과 더 나아가 그 작품을 만든 화가에게 말을 걸고 질문을 던질 마음의 준비를 한 후에 루브르에 찾아가 그곳에 사는 많은 영혼들과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 그 전에 칸트의 오후 네시처럼 나 또한 이 책을 자주 들여다 보며 영혼의 휴식을 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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