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의 산을 가다 - 테마가 있는 역사기행, 태백산에서 파진산까지 그 3년간의 기록
박기성 지음 / 책만드는집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까마득한 어린시절엔 집 뒤에 병풍처럼 둘린 산이 나의 놀이터였다. 그때는 산을 오르려고 올랐던게 아니라 심심해서 산 꼭대기에 있는 바위까지 갔다오는 것이 놀이였었던 것 같다. 그러다 도시로 이사오고부터는 앞만쳐다보고 사는 것도 무지 무지 바쁜 일상을 살다보니 눈만 들면 보이는 산인데도 별 관심을 갖지 못하고 살았다. 학창시절, 봄이면 꽃구경가자, 가을이면 단풍구경가자며 그렇게 산에 가자는 부모님의 말씀에 "거, 참, 다시 내려올 산은 뭐하러 올라가."냐며 방구석에만 박혀있었던 기억이난다. 나의 그런 생각은 한참동안 변함이 없었고 대학생이 될 때까지 정상에 올라본 산이 어린시절 시골 뒷산 말고는 전혀 없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대학4학년이 되었을때,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설렘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경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제주도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한라산 한번 안올라가보고 육지로 돌아가는 건 좀 아니다 싶어 한라산에 오르게 되었다. 산은 그냥 무작정 올라가면 되는 줄 알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빈몸으로 터덜터덜 홀로 올랐던 한라산. 날씨같은 건 보지도 않고 무작정 갔던 터라 그날 한라산에 내린 100m의 비와 정상에서 아프게 내 머리를 쥐어 박던 우박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앞이 보이지 않던 빗속을 이러다 죽는게 아닌가 하는 심정으로 올라가다 갑자기 눈앞에 짠 모습을 드러낸 삼각대를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는....... 그 후로 산과 사랑에 빠졌다. 세상의 산이란 산은 다 올라가 보고 싶은 욕망! 그러나 제주도 오름 몇개를 오르고 육지로 와서는 바쁜 일상 때문에 무등산과 동네 뒷산을 오르는 것으로 마음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산에 가고싶다는 불붙는듯한 열망이 사그라들지 않던 판에 이 책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가 내 눈길을 사로 잡았다.

 

 이 책의 지은이 박기성님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했고, 대학시절에는 산악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하얀 산'을 오르는 꿈을 꾸며 사시는 분이시다. 전공과 취미를 함께 살려 일군 첫번째 결실이 이 책이라고 한다.

 제목처럼 이 책은 삼국사기를 바탕으로 삼국의 역사 속에 나오는 여러 전투들이 일어났던 산성이나, 제사를 드리러 올라갔던 산을 찾아 나서는 역사 기행이다. 태백산, 삼태봉, 황령산, 와룡산, 비룡산, 어룡산, 취적봉, 비음산, 구룡산, 형제봉, 치술령, 비학산, 아차산, 낙영산, 화왕산, 자양산, 이성산, 장미산, 위례산, 재건산, 주산, 금강산, 청성산, 중성산, 취적산, 성 뫼, 도토성산, 갈마산, 파진산 이렇게 총 30개의 산을 소개하고 있는데 앞부분에는 실제 역사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싣고, 뒷부분은 그 역사적 장소를 지은이가 직접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거의 이천년에서 이천오백년 전에 있었던 일을 찾아나선다는게 쉬운일은 아니라 지은이는 5만분의 1지도와 여러가지 역사사료를 뒤져가며 지명으로부터 추측의 추측의 거듭하고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실제 지형과 비교해서 도출된 가설을 가지고 어떤 확신에 이르기도 하며 산이 말해주고 있는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 노력한다. 삼국사기의 산을 두루 다니며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잘못왔다 여겨진 길의 끝에서 놀라운 발견을 하기도 하며 우리 강산 곳곳에 남겨진 삼국의 발자취를 보여준다. 경로나 거리, 걸리는 시간도 맨 밑에 표시해 주어 누구나 지은이의 발자취를 따라 삼국사기의 산을 갈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사실 산과 사랑에 빠진지 얼마 되지않아 등산을 하고 싶어도, 너무 많은 산과 수많은 산봉오리들을 보며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하고, 덩그러니 하나만 있는 산이 아니라 여러개씩 붙어있는 산을 보면 어디가 무슨산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원래 무작정 달려드는 건 금방 흐지부지 해져버리는 성격이라, 일단, 대한민국의 모든 산을 다 다녀보겠다는 목표를 세우기는 했지만 너무 많아서 계획을 세우는 데만도 무지 오래걸리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는 내게 새로운 해법을 제시해준다. 산은 그냥 산이라서 좋기도 하지만, 이렇게 테마를 정하고 보물찾기 하듯이 다니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산티아고의 순례길, 제주도 올래길처럼 코스를 정해놓으면 훨씬 목표의식이 생기고 힘이 나는 것 처럼, 테마가 있다는 것은 왠지모를 에너지를 솟구치게 하는 것 같다. 특히 수천년의 흐름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우리 강산을 다니며 우리는 모르지만 산만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을 책을 통해 배우고 직접가서 보고 느껴보다는 건 무지 설레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기화로 삼아 다양한 주제로 등산계획을 짜고 실제 산을 오르며 산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다.산아 말해줘~! 니가 알고있는 걸!!!

 

(이 서평은 책만드는집 출판사에서 무료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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