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사랑한 파리 - 어느 낭만주의 지식인의 파리 문화 산책
이중수 지음 / 샘터사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여름의 열기가 봄의 영역들을 조금씩 조금씩 밀어내고 있는 요즘. 이 마지막 봄날을 즐기기 위해 나는 파리로 떠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점심식사 후에 즐기는 오후의 여유로움과  이 책 ’그녀가 사랑한 파리’ 한 권이면 충분하다. 참,  이제 막 프린트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파리 지도 한장도 챙겨든다.(책안에는 아쉽게도 파리 지도가 없다.) 이제 여행을 떠날 준비는 마쳤다. 초록빛이 무성한, 봄으로 가득한 공원 한 켠에 자리를 잡는다.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뒤 조심스레 책장을 한장씩 넘기며 파리 여행을 시작한다.

 잠깐! 이번 여행에서 중요한건 목적지만이 아니다. 함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여행은 전혀 다른 색깔로 반짝이니까! 이중수. 그는 시인이다. 시의 언어로 말하고, 철학자처럼 생각하고, 화가처럼 그림문자로 이야기하며,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을 줄 아는 남자다. 그의 빛깔은 파리를 닮은 회색빛이다! 그의 말처럼 모든것을 포용하는 회색! 혼자만의 여행이 외롭지 않게 그림자처럼 함께 해 주고, 한낮의 더운 열기에 지치지 말라고 그늘을 주는 회색빛이다. 곧 파리로 돌아올 파리를 사랑한 아내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이지만 6월의 어느 일주일 동안만은 내게도 그 이야기를 나누어 준다. 이제 진짜 파리로 떠날 시간이다! 슝슝~~!!

  전 세계 지성의 산실이라는 생제르맹데프레에서 카페 레되마고에 들러 그 옛날 헤밍웨이가 앉았던 자리를 바라보며 차 한잔을 마신다. 그리곤 오르세 미술관으로 가 인상파 화가들을 만난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 피카소와 르누아르의 작품도 보인다. 내 방에  ’피아노 치는 소녀’가 걸려있어 매일 보기에 더욱 반갑다. 이번 여행의 안내자로부터 인상주의의 ’인상’이란 말이 별로 좋지 않은 뜻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여러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전시장을 빠져나와 레스토랑 창가에 앉아 그의 그림 속 창 밖 풍경을 바라본다. 

 센강! 어릴적 즐겨보던 만화 ’세느강의 별’에서만 봤던 그 센 강변을 거닐며 가장 마음에 드는 시몬 드 보부아르 구름다리를 건너본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사랑이야기가 못내 안타깝다. 이번엔 몽마르트 언덕!  내 방에 걸린 에펠탑과 개선문 그림엔 이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던, 어쩌면 지금도 그리고 있을 어느 화가의 이름이 서명되어 있다. (언니가 파리여행을 다녀오며 이 몽마르뜨에서 사다 준 것이다.) 이번엔 팡테옹으로 가 루소, 볼테르,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뒤마 등의 영혼을 만난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들!! 그들은 죽어서 이곳 묘지에 잠들어 있지만 그들의 영혼은 내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리라.

 페르라세즈 묘지! 파리코뮌 당시 ’피의 일주일’동안 정부군의 총탄에 맞아 죽어갔을 코뮌 전사들이 평안이 잠들길 조용히 빌어본다. 개선문을 바라보며 나폴레옹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전쟁에서만 승리한게 아니었구나.... 파리 곳곳에 이루어놓은 그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보니 그는 예술면에서도 영웅이었다. 노트르담 성당과 요한23세 정원을 둘러보고 드디어 루브르로 간다. 몽상가들이란 영화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9분45초라는 세계기록을 깨기위해 이 루브르를 가로질러 얼마나 사정없이 달렸던가! 나도 꼭 그들의 기록에 도전해 보리라 꿈꿔왔지만 잠시 그 꿈은 접어두고 천천히 루브르의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놀이공원입구같이 예쁜 파리 시청사 건물을 지나 피카소 미술관, 조르주 퐁피두 센터를 구경하고 엄청 고급스럽고 화려한, 금박을 입힌 돔 성당에 들어가 성가대의 아름다운 찬양소리를 듣는다. 밤이 됐다. 불이 켜진 에펠탑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감상하고는 평화의 벽으로 가 ’평화’라고 씌여진 한글을 발견하고 빙긋 미소를 지어본다. 프랑스 혁명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지나, 우리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오 상젤리제~’의 아름다운 거리를 지나, 콩코르드 광장으로 간다. ’람세스’라는 소설에서 읽었던 그 오벨리스크가 바로 여기있다. 와우~ 정말 대단하다. 이집트에서 여기까지 옮겨오느라 4년이 걸렸다고 하니 그것 참.....

 이제 이 여행도 거의 막바지다. 세자르의 묘지에서 세자르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자니 오늘 오후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장마가 시작됐다) 그래서 이제 실내 위주로 케브랑리 박물관, 프랑스 국립 도서관, 장 누벨이 설계한 아랍 세계 연구소를 거쳐 기메 박물관으로 가  파리 속의 한국을 만난다. 중학교때 주관식 단골 정답으로 출제되었던 그 유명한 책!! ’직지심체요절’이 이곳에 있다. 아~! 주머니에 담아오고 싶다. 굵은 빗줄기가 조금 잦아들자 가랑비를 맞으며 볼로뉴 숲을 걷는다. 나름 운치가 있다. 서울시와 파리 시 자매결연 10주년을 기념하여 조성된 ’서울정원’을 거닐며 이 ’국제적 우정’에 뿌듯해 한다. 초록빛과 푸른빛이 어우러진 볼로뉴 숲의 호숫가에서 정명훈이 지휘한 구스타프 말러의 제1번 교향곡 <거인>을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이 호수의 품에 풍덩 안긴다. 이제 여행이 끝났다.

 감성적인 목소리의 시인과 함께라서 더욱 즐거웠던 여행이었다. 두근두근. 이를 어쩌나, 지금 막 파리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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