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녹는 온도
정이현 지음 / 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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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책상과 의자와 책 열 권이 간신히 꽂히는 책장 말고는 아무 가구도 없던 그 작은 방. 거기서 내가 제일 자주 한 일은 맨바닥에 가만히 드러누워 있기였다. 천장 벽지는 흰색이었다. 척추를 반듯하게 펴고 누워 그 밋밋하고 낯선 벽을 한참 올려다보다 돌아오곤 했다. 여기 이렇게 누운 채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진즉 소설 밖으로 내던져져 있었음을 알았다. 어쩌면 도망쳤음을 알았다. 그렇다 해도, 어디서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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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3
피에르 드리외라로셸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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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음은 약속이었고 나는 거짓말을 먹고살았지. 그리고 거짓말쟁이는 바로 나였어."
 그 말을 하면서 알랭은 의사당 건물을 보았다. 성냥갑에 우스꽝스러운 작은 깃발을 단 듯한 저 집은 무엇일까? 그리고 주위에 밀려드는 자동차의 물결은?
 "저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한심해." 알랭이 투덜거렸다.
 "그 어디로도 가지 않아. 그냥 가는 거야. 나는 저렇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좋고, 저런 걸 보면 가슴이 찢어질 듯 감동을 받아. 저거야말로 영원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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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그들이 궁금해졌다 - 심리치료, 그 30년 후의 이야기
로버트 U. 아케렛 지음, 이길태 옮김 / 탐나는책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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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내가 지금까지 재회한 세 명의 내담자들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가 끝나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곳을 미련 없이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프롬 박사가 치료의 목적을 생명애로 상정했을 때 프롬 박사는 단지 좋은 기분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생명애는 완전히 살아 있는 기분을 느끼는 것, 다양한 감정(대단한 행복감과 열정, 기쁨은 물론이고 비통과 연민, 슬픔을 포함해)에 더더욱 동참할 수 있는 것, 생산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삶의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 삶을 향한 희망과 사랑의 태도를 의미한다. 생명애의 반대말인 시체성애증은 절망과 부정의 태도, 삶을 포기하는 것, 삶의 가능성을 좌절시키는 존재 방식을 의미한다.

문득 프롬 박사가 예전에 내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나는 내담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서사시의 영웅으로 생각해요."
ㆍㆍㆍ
나는 한 사람의 인생이 순수한 서사시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ㆍㆍㆍ
나는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서 인간의 생존 능력에 경외감을 느꼈다. 그 능력이야말로 영웅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치료는 효과가 있든 없든 그 능력에 비할 바가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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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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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의를 떠나서 보편적으로 부모와 자녀의 심리적 분리는 부모뿐 아니라 자녀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자신 안에 내면화한 부모의 모습과 싸우고, 달래고, 도망치고, 협상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곧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성장의 과정이다. 나이가 든다고 끝나는 일도 아니고 어쩌면 평생 지속해야 하는 과제이다.
나는 그 과정을 어떻게 치러내는가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각자도생의 경쟁 속에 이기적 가족주의의 강력한 영향이 모든 사람의 삶에 어른거리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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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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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배는 금방이라도 세계가 망할 것처럼 이야기했으나 d는 의아했다. 망한다고?
왜 망해.
내내 이어질 것이다. 더는 아름답지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삶이. 거기엔 망함조차 없고... 그냥 다만 적나라한 채 이어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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