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민정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에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사서 읽었다. 다른 문학상작품집보다 확실히 산뜻하다. 비교해서 읽어보니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도 가격이 착하다.

  올해 작품집에서 관심이 가는 작품은 김세희 작가의 가만한 나날이다. 서사가 강하지는 않고, 내용도 평범하다. 이러한 청춘들의 리얼리즘은 김애란, 황정은, 김금희 등 다루는 작가가 많고도 많다. 그런데도 읽고나니 김승옥작가의 [서울 1964년 겨울]을 읽고 덮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나를 둘러싼 세계의 뭔가가 바뀐거다.

 

 

  경진은 올해 처음으로 회사에 입사한 사회초년생이다. 출근하기 전날, 아는 언니를 만나 '프로'의 마음가짐을 배운다. 남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아도 되지만, 일을 할땐 확실히 하고 풀어질땐 확실히 풀어지라는. 경진이 하는 일은 마케팅이다. 가상의 인물로 블로그를 만들고 의뢰받은 제품홍보를 하는 것이다. 경진은 채털린 부인의 연인 속 주인공을 기저로 블로그를 개설한다. 승승장구하는 경진과 달리 동료들은 부서를 옮기거나 일이 맞지 않아 회사를 그만둔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이 리뷰한 제품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봤다는 사실을 경진은 알게 된다. 이후로 경진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게 된다. 새로운 것들을 보게 된다. 자신이 쓰던 치약에 독성물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인터넷에 있는 리뷰들이 믿을게 못된다는 것을 몸소 이해한다. 이해한다는 것은 머릿속으로만 깨닫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몸소 느껴야 비로소 이해를 하는 것이다. 느끼기만 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까지 바뀌는 것이 진정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경진의 회사는 n포털의 시스템 알고리즘이 바뀌면서 망하게 된다. 경진은 훗날 회사에서 퇴사한 예린을 만나게 된다. 예린과 해어지며 경진은 일이 안 맞는다는 예린을 속으로 비웃었던 기억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했던 말, "저는 이 일이 진짜 적성에 잘 맞는 거 같은데."을 다시 거둬들어야 할 것만 같다. 자신도 사실 잘 안 맞았다고.

 

 

  경진의 회사는 n포털의 로직에 따라 돈을 번다. n포털의 알고리즘에 따라 '최적화'가 되면 상단에 올라 많이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가 망하게 된 경위도 n포털의 알고리즘 때문이다. 바뀌게 된 알고리즘 때문에 기존의 방법으로는 회사가 꾸려나가지지 않는 것이다.

  이 구조는 마치 '자본주의'의 구조와도 같다. 홍기빈 교수의 [자본주의]에 따르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기원으로 16세기 영구의 '자본가적 차지노동자'를 뽑았다고 한다.  그들은 땅의 주인인 지주에게 얼마만큼의 돈을 줘서 땅을 빌린다. 그리고 생업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을 주며 그 땅에서 일을 시켜 생산을 한다고 시장에 내다 판다. 그 중에 얼마를 지주와 노동자에게 주고 남은 돈을 그가 갖는 것이다. 이것이 이윤이고, 그는 생산도 하지 않고 돈을 번, 최초의 자본가인 샘이다. 당시에는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인식이 없었고, 자본, 자본가에 대한 명확한 구분도 없었다. 이후에는 물질적 고정 자본인 '기계'를 통해 자본주의의 구조가 명확히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소설 속 n포털은 지주와 같다. 블로그라는 토지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n포털의 토지에 직원이라는 노동자를 이용해 이윤을 남긴다. 노동자는 직원 뿐만이 아니다. n포털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곧 노동자가 된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남긴 리뷰나 여론도 하나의 생산이기 때문이다. 회사는 곧 자본가의 위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경진이 회사를 퇴사하며 짐을 꾸릴 때, 작가는 '월가와 같이'라는 포현을 쓴다. 월가는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예전 보다도 무한한 이윤을 챙길 수 있다. 가상이라는 공간에서의 시스템, 블로그는 무한정 생성이 가능하다. 또한 제품과 소비자 사이에, 가상공간이 자리잡음으로서 '리뷰된 제품'이라는 '가상 제품'이 생긴다. 이로 인해 현대인은 노동의 소외뿐만 아니라, 이제는 제품과 소비자와의 소외현상도 보여준다.

  이러한 면에서 이 소설은 '소설 자체'에 대한 비판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n포털 속 블로그는 마치 시뮬라크르처럼 보인다. 블로그는 이미 있는 정보를 재생산한다. 사실 그 자체, 제품 그 자체 사이에 벽을 하나 더 만드는 셈이다. 게다가 블로그에 올린 글들 역시 소설과 다를게 없지 않는가. 한편 리얼리즘 소설은 이러한 면에 더욱 밀접하다. 그러니 리얼리즘을 쓰고 있는 작가가 리얼리즘에 대한 한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채털린 부인의 연인]이라는 소설이 괜히 등장한 게 아닌 것 같다.

 

 

  회사에서 겪을 일로 경진은 바뀌었다. 마치 [서울 1964년 겨울]의 안이 '자신이 너무 늙었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그녀와 달리 그녀의 동료들은 처음부터 이 일에 대한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예린은 회사를 그만두고, 홍성식은 회사일을 가볍게 여겨 불만을 가진다. 그러나 경진은 '프로'가 되었다. 저항감은 없고 '프로'라면 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경진은 나치의 전범들과도 같다. 위에서 시키니까 한 일들이었다. 나치의 전범들도 '프로'였다.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에서 '성과주체'라는 개념을 얘기했다. 성과주체는 '할 수 있다'라는 '긍정성의 페러다임' 속에 매몰된 자아이다. 일이 안되는 것은 사회의 탓이 아닌 '나의'탓이다. 주체는 점점 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텅 빈'내가 된다. 한편 한병철은 멜랑콜리와 우울증을 구분하는데, 멜랑콜리는 '명확한 적'이 있다면, 우울증은 명확한 적이 없다. 텅비었기 때문이다. 타자가 없고, 모든지 '나'일 뿐이다. 이는 라캉의 거울단계와는 다르다. '타자를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를 타자에게' 맞춘다. 멜랑콜리가 검은(Black) 담즙이라면, 우울증은 텅빈(Blank) 담즙이다. 경진은 나치의 전범들과도 같다.

 

 

  자본주의 사회를 몸소 깨달은 경진은 앞으로도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문제점을 몸소 깨닫고, 사회의 알고리즘도 직접 보았다. 그 일이 더 이상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녀가 여전히 가만히 있을 지, 아니면 움직일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녀는 사회의 일면을 보았을 뿐인데도 더 이상 초년생이아니다. 다만 그녀는 이후로도 뉴스를 찾아보며 '인식'할 것이며, 손쉽게 '프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