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민정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경진의 회사는 n포털의 로직에 따라 돈을 번다. n포털의 알고리즘에 따라 '최적화'가 되면 상단에 올라 많이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가 망하게 된 경위도 n포털의 알고리즘 때문이다. ‘프로’인 경진은 ‘가만히’있었다.
이 구조는 마치 '자본주의'의 구조와도 같다. 이 소설 속 n포털은 땅의 주인인 지주이다. 블로그라는 토지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n포털의 토지에 직원이라는 노동자를 이용해 이윤을 남기는 자본가가 된다. 외주를 맞기는 회사들이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결국은 경진도 노동자이며, n포털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곧 노동자가 된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남긴 리뷰나 여론도 하나의 생산이기 때문이다. 경진이 회사를 퇴사하며 짐을 꾸릴 때, 작가는 '월가와 같이'라는 포현을 쓴다. 월가는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예전보다도 무한한 이윤을 챙길 수 있다. 가상이라는 공간에서의 시스템, 블로그는 무한정 생성이 가능하다. 또한 제품과 소비자 사이에, 가상공간이 자리 잡음으로서 '리뷰된 제품'이라는 '가상 제품'이 생긴다. 이로 인해 현대인은 노동의 소외뿐만 아니라, 이제는 제품과 소비자와의 소외현상도 보여준다.
이 소설은 동시에 '소설 자체'에 대한 비판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n포털 속 블로그는 마치 시뮬라크르처럼 보인다. 블로그는 이미 있는 정보를 재생산한다. 사실 그 자체, 제품 그 자체 사이에 벽을 하나 더 만드는 셈이다. 게다가 블로그에 올린 글들 역시 소설과 다를 게 없지 않는가. 한편 리얼리즘 소설은 이러한 면에 더욱 밀접하다. 그러니 리얼리즘을 쓰고 있는 작가가 리얼리즘에 대한 한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채털린 부인의 연인]이라는 소설이 괜히 등장한 게 아닌 것 같다.
회사에서 겪을 일로 경진은 바뀌었다. 마치 김승옥 작가의[서울 1964년 겨울]의 안이 '자신이 너무 늙었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그녀와 달리 그녀의 동료들은 처음부터 이 일에 대한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예린은 회사를 그만두고, 홍성식은 회사 일을 가볍게 여겨 불만을 가진다. 그러나 경진은 '프로'가 되었다. 저항감은 없고 '프로'라면 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에서 '성과주체'라는 개념을 얘기했다. 성과주체는 '할 수 있다'라는 '긍정성의 패러다임' 속에 매몰된 자아이다. 일이 안 되는 것은 사회의 탓이 아닌 '나의'탓이다. 주체는 점점 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텅 빈'내가 된다. 이들은 우울증 환자이다. 멜랑콜리는 '명확한 적'이 있다면, 우울증은 명확한 적이 없다. 텅 비었기 때문이다. 타자가 없고, 모든지 '나'일 뿐이다. 이는 라캉의 거울단계와는 다르다. '타자를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를 타자에게' 맞춘다. 멜랑콜리가 검은(Black) 담즙이라면, 우울증은 텅빈(Blank) 담즙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몸소 깨달은 경진은 앞으로도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문제점을 몸소 깨닫고, 사회의 알고리즘도 직접 보았다. 그 일이 더 이상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여전히 가만히 있을 지, 아니면 움직일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녀는 사회의 일면을 보았을 뿐인데도 더 이상 초년생이아니다. 다만 그녀는 이후로도 뉴스를 찾아보며 '인식'할 것이며, 손쉽게 '프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