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 - 북아일랜드 캠프힐에서 보낸 아날로그 라이프 365일
송은정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완독 66] 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 송은정. 북폴리오.


십 년 전, 삭막했던 3년간의 회사생활을 끝내고 받은 퇴직금으로 한 달 동안 뉴욕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숨 막히는 한국에서의 삶이 싫었고 어디든 도망가고 싶었으며, 때마침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지인의 집에 묵어도 된단 연락을 받았다. 스무 살 후반의 나는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다.

 

고3을 마치고 바로 대학 진학, 그 흔한 휴학 한 학기 없이 4년을 내리 달리다 바로 취업까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는 온 집안의 걱정을 떠안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었다.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직장 상사와 끝도 없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업무들. 야근을 밥 먹듯 하던 그 시절, 월급을 시급으로 바꾸면 500원도 안 되던 그때.  그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 어디든 여기보단 나을 거란 기대로. 만약 그곳이 살기 좋다면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공부를 계속하거나, 의사소통이 적당히 유지되고 살만하다면 그곳에서 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내게 막연한 기대감과 자신감을 주었던 책이 박상미의 '뉴요커'(2004)이다. 요즘처럼 여행 관련 책이나 에세이가 많던 시절이 아닌 2007년, '뉴요커'는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뉴욕 여행 이야기나 뉴욕 어디까지 가봤니 식의 글이 아니라 뉴욕 냄새, 사람 냄새가 나는에 석이었다. 나는 '뉴욕으로 여행을 떠나 박상미처럼 책을 써야겠다.'라는 막연한 바람을 담아 작은 수첩과 사진기를 들고 약 4주간 여행을 떠났다.


뉴욕에서 보낸 시절은 참 좋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살기보다 한국에 돌아와서 살아야 함을 깨닫고 그 후로 몇 년 동안 (비교적) 자유롭게 보냈다. 인턴, 아르바이트, 대학원생 등 돌이켜보면 내 인생 중 가장 허무하고 여유롭고 적당히 흘려보내던,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이가 보기엔 가장 보잘 것 없던 그 시기. 그때의 여유와 자유로움이 지금 내 삶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 꿈꾸던 인생과 지금의 내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내 의지대로 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좋다. 십 년 전 여행에서 썼던 글귀나 드로잉은 지금 다시 찾아보기에 창피한 깊이와 수준이지만 그 시절의 내겐 충분한 위안을 주었다.

 

 

 

 

 

 

 

 

'천국은 아니지만 살만한'을 읽으며 고달팠던 3년간의 회사인 생활을 그만두던 무렵 읽고 내게 용기를 줬던 십 년 전 그 책이 떠올랐다. 십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송은정'작가처럼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사서 고생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경험해봤으니 알 수 있는 것. 책을 읽으며 십 년 전의 내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뉴욕으로 떠났던 십 년 전보다 업무 시간은 절반 정도 줄었고, 벌이는 두 배 이상 늘었으며, 삶의 만족도는 열 배쯤 늘었으니 이만하면 해볼 만한 도전이며 살만한 인생이 아닐까.

서울 땅에서도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리며, 업무를 마치고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편안한 하루를 준비하고 마무리할 수 있으니 이만하면 여기가 천국이 아닐까. 적당한 고민거리로 나를 긴장할 수 있고, 해볼 만한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기, 이곳에서의 삶이 나는 좋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에세이 한 편을 읽었다.

타지에서 고생고생 생고생을 하고 온 저자의 다음 행보를 응원한다. 그리고 잘 되었으면 좋겠다.

 

 

 


#천국은아니지만살만한 #송은정 #북폴리오 #북아일랜드 #캠프힐 #자원봉사 #여행 #힐링 #에세이 #일단멈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