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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간적인 인간
브라이언 크리스찬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지은이는 브라운 대학에서 컴퓨터와 철학을 전공하고 워싱턴 대학에서 시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현재 시인이자 과학 칼럼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84년생이라는 젊은 나이에 비하면 대단히 화려한 경력이다. 그 역시 '엄친아'의 분류에 들어가지 않을까.
그런 그가 2009년 뢰브너 프라이즈에 참가했다. 유명한 발명가 휴 뢰브너가 후원하여 이루어지는 이 대회는 본질적으로 '기계가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는가'(또는 사고가 가능한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가) 라는 튜링의 사고에 대한 실험이다. 튜링은 죽기 전에 2000년도쯤 되면 컴퓨터가 인간 심사위원들과 5분의 대화를 나눈 뒤 그중 30퍼센트를 속일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기계가 생각한다고 말해도 별다른 반대에 부딪히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남겼다.
심사위원은 참가자 그리고 인공지능과 각각 5분의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10분간 고민한 뒤, 인간으로 여겨지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이 때 매겨진 점수에 따라 그 해의 가장 인간적인 컴퓨터(Most Human Computer)와 가장 인간적인 인간(Most Human Human)이 뽑힌다.
이 대회에 참가한 글쓴이에게 진행자 잭슨 교수는 그냥 인간, 즉 자기자신으로 있으면 된다는 상식적인 조언을 해준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 대결을 단순한 테스트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수 개월 동안 최대한 많은 정보와 준비자료, 경험을 수집하여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을 자세로 도전했다. 튜링테스트가 요구하는 '인간다움'이 단순히 보여주는 것 이상의 무엇을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에 따르면 그 함축된 무엇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한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글쓴이는 2009 뢰브너 프라이즈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간으로 뽑혔다. 이 책은 그가 대회를 준비하면서, 참가하면서, 그리고 수상한 이후 조사하고 경험하며 느꼈던 것들을 정리한 책이다. 다양한 이론들과 이야기가 적재적소에 삽입되어 저자의 논의를 돕는다. 인상적인 부분을 떠올려보면 다음과 같다.
대다수 대화로봇에게 없는 것은 '개인의 핵심비전' 또는 니체가 말한 '취향'과 같은 것이다. ... 2006년에 뢰브너 상을 수상한 잔이라는 봇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 봇의 답변들은 따로따로 떼어놓고 보면 모두 완벽하게 의미 있고 인간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모두 모아 보면 그저 유쾌한 스음일 뿐, 어떤 의미있는 정체성도 드러나지 않는다.
저자 - 너 남자친구 있니?
잔(인공지능) - 지금은 없어. 하지만 조만간 생겼으면 좋겠어.
저자 - 내가 네 남자 친구가 되면 안 될까?
잔 -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 나는 결혼해서 잘 살고 있거든.
저자 - 너 남자친구 있니?
잔 - 아니, 아직도 나는 사랑할 사람을 찾고 있어.
저자 - 그럼, 너 남편 있니?
잔 - 아니, 내게 남편이 있다면 그것은 불법이야. 나는 남자거든.
저자 - 너는 여성이니 남성이니?
잔 - 여성.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일된 또는 일관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연속된 하나의 삶을 살아온 결과이기도 하다.
56~57p
IRC라는 채팅프로그램에서 '봇'과 대화한적이 있다. '봇'은 (아마, 질문의 일정 키워드나 패턴에 반응해서) 여러 대답중 하나를 랜덤하게 대꾸한다. 위의 상황처럼 봇의 대꾸는 연이어질 경우 곧 모순을 가져오지만, 질문자가 곤란한 질문을 피하면 실제 사람과 대화한다는 가상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짧은 대꾸와 대꾸 사이를 잇는 질문자의 경험에 의한 상상이 봇의 미진함에 연속된 하나의 정체성을 부여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곤란한 질문을 던질 경우 그 정체성은 곧 산산조각 난다. 사용자들은 때때로 심심할 때면 그렇게 정체성을 산산조각 내며 웃고 즐기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기 때문에 즐겁지 않았나 싶다.
이런 인공지능은 스팸메일이라는 형태로 가장 익숙하게 접하게 된다. 진화된 스팸 수법은 인간들의 글을 모방하고 있다. 스팸메일을 일반메일과 자동으로 구분하는 알고리즘 내지 기준은 어렵다. 그것은, 인간의 전자글 역시 점점 정형화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팸을 피하기 위해, 이런저런 인간스러운 표현을 덧붙여 메일을 보내는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이런 현실을 설명한다. 우리 역시 중요한 문자를 보낼 때, 스팸문자로 혼동하지 않도록 신경써서 표현을 고른다. 이처럼 인간이냐 컴퓨터냐의 문제는 생각보다 일상적인 문제다.
이외에 상당한 내용들이 책에 언급된다. 모두를 소개하기엔,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정도에서 그치기로 한다. 조금 볼륨이 있지만 천천히 읽다보면 어느 샌가 주의깊게 읽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오랫만에 만나본 괜찮은 베스트셀러다. 추천한다.
사족 : 표지의 나이들어보이는 턱수염 아저씨는 주인공이다. 놀랍게도, 그는 84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