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토록 아찔한 경성 - 여섯 가지 풍경에서 찾아낸 근대 조선인들의 욕망과 사생활
김병희 외 지음, 한성환 외 엮음 / 꿈결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OBS의 교양프로그램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의 부분을 정리한 것이다. 근대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전문가들이 강의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상은 상당히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그 중 6가지의 주제를 선별하여 정리했다.
현재 OBS홈페이지에서는 그 프로그램의 다시보기를 지원하고 있다. 다소 화질이 낮지만, 무료회원가입을 통하여 생생한 영상을 맛볼 수 있다. 다만, 방송경험이 적은 분들인지 종종 말을 더듬고 익숙하지 못한 모양새가 흐름을 끊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책이 영상보다 내용의 전달에 더 나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이러한 출판본에 의미가 부여되는것 같다.
이 글은 책에 대한 리뷰이므로, 영상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책을 흩어보자. 책은 6개의 독립적인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각각은 어느 주제에 대한 전문가의 설명과 남경태씨(위 사진의 오른쪽)의 좌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영상을 정리한 것이기에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조금 산만한(?) 경향이 있는 영상보다 가독성 면에서는 책이 낫다. 내부디자인은 깔끔하다.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고, 적절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점수를 주자면 5점 만점에 4점정도.
형식은 둘러보았으니, 이제부터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책의 분량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인상 깊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첫 챕터는 근대의 '광고'다. 당시(식민지시절)의 광고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부분을 인용해 본다.
당시에는 광고가 상품판매의 수단으로만 기능했던 게 아니라 새로운 문물에 대한 정보 제공 측면에 기여했고, 식민지 조선인들이 광고라는 창을 통해 근대성을 동경했다는 사실입니다.
54p
당시의 광고에는 '정보제공'이라는 '쓸모'가 있었던 듯 하다. 아울러 오늘날 자주 보이는 기사식 광고(기사로 착각하기 쉬운 광고)가 1920년대에도 이미 등장했었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기사식 광고의 장점은 제품의 특성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매체가 다양하기 때문에 정보를 자세히 듣지 않지만 당시는 신문밖에 없었기 때문에 기사를 굉장히 자세히 읽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당시의 기사식 광고는 상당히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57p
글쓴이 김병희 교수는 근대의 광고를 통하여 식민지 조선인들의 모습을 분석한다. 48p부터 50p까지 그 결론이 서술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식민지시절 조선인들은 욕망의 대상을 향해 직접 가지 못하고 '광고'라는 중개자를 통해서 가게 된다. 이는 '돈키호테'가 '아마디스'라는 전설의 기사를 통해서 이상적인 기사도에 닿으려고 한 것과 같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식민지 조선인들의 욕망은 주체적인 인식이 결여되었다는 한계가 있다. 글쓴이는 식민지 근대성의 한계가 이러한 맹목적인 모방성에 있다고 결론짓는다.
전문가의 말에는 토를 달기 어렵다. 정보량에서 승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살펴보고 싶은 것은 비록 구조적인 한계가 있더라도 그러한 구조를 넘어선 움직임도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 당시의 조선인들 중에도 주체적인 근대에 대한 의식이 발생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물론,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 이후 한 세대가 지나오면서 이미 의식적으로 '주체성'과 상당히 멀어져가는 상황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관련 자료가 있을것 만 같은 다소 막연한(?) 기대를 해본다.
그 외에, '트로트' , '사법제도' , '문화재 , '미디어' , '철도' 라는 5개의 챕터가 근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달해 준다. 앞서 '광고' 챕터에서 일반인들이 잘 모르거나 오해하는 새로운 사실들을 짚어준 것처럼 이하의 챕터에서도 흥미롭고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것을 소개해 본다.
'트로트'는 사실 일본스러운 음악장르라고 한다. 리듬부터가 우리 고유의 3박자가 아니라 일본 고유의 2박자다. 이러한 트로트가 한국 음악의 클래식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식민지시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식민지시절 일본 등을 통하여 조선은 근대를 접했고, 자연스럽게 근대음악이 형성이 된다. 이에 따라 민요의 근대버전으로, 우리 고유의 3박리듬이 잘 살아있는 '신민요'라는 장르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 장르는 곧 등장한 '트로트'에 밀려서 곧 사라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새로운 '하이칼라' 세대가 그것을 촌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 우리가 '트로트'를 촌스럽게 생각하는것처럼. 관련 부분을 인용해 본다.
트로트라고 하면 쿵짝쿵짝 하는 절제되지 않은 노래라고 생각하는데 실제 이 시대의 노래를 들어보면 굉장히 절제감이 느껴집니다. 가수 한 사람과 기타 주자 한 사람이 팽팽하게 맞선 긴장감이 느껴지는 아주 세련된 노래입니다. 이처럼 트로트는 당시 신교육을 받고 일본어도 꽤 하는 대도시의 교육받은 젊은이들의 노래였습니다. 일본 대중음악의 트렌드였으니, 아주 세련된 음악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77p
트로트의 기원이 어떠했든, 지금의 트로트는 토착화가 끝난 한국의 장르다. 그러나 글쓴이는 현재 불려지는 트로트가 소시민적인 굴복과 체념의 정서를 안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고 본다. 그러한 분석 아래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소망을 피력해본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나이가 먹어도 "나는 트로트를 이해하지 못하겠어. 머리로는 이해하겠는데 공감은 못 하겠어." 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트로트가 인기 있는 세상은 너무나 좋지 않은 세상이에요.
109p~110p
내용이 길어져서 읽는 이가 지루할 염려가 들어서 이 리뷰는 슬슬 정리하기로 한다. 소개한 내용은 이 책의 일부분으로 그 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상당히 담겨있다. 이 쪽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찾아봐도 좋을 것이다. 다루지 않은 '사법제도' , '문화재 , '미디어' , '철도' 등도 흥미롭다.
우리는 막연하게 '근대'를 머리 속에서 지우곤 한다. 그 이유는 아마, 우리의 근대가 일본의 식민지라는 소위 암흑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어려웠던 시절은 머리 속에서 지우고 싶어하니까. 하지만, 그러한 '근대'는 동시에 우리가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넘어오는 중요한 길목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들이 충돌하고 그 중 중 일부는 선택되어 현대로 전해지고, 일부는 사라지는 역동적인 모습들이 펼쳐진 시대가 바로 근대인 것이다. 비록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힘을 들여서라도 근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기획을 해준 OBS방송국과 책을 출판한 꿈결에 감사하며 잡문을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