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쓰는가?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중요한 것은 너무 빨리 걷지 않는 거라고 그는 설명했다.
시속 3킬로미터 정도의 속력을 유지해야만 보고 싶은 것을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p51

 

<자네가 내게 준 글 말인데...> 그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그 글을 읽으면, 언젠가 우리 어머니한테 일어난 일이 생각난다네. 하루는 길거리에서 웬 낯선 사람이 어머니에게 다가오더니, 사뭇 상냥하고 우아한 어조로 어머니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칭찬했지. 어머니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도 없었고, 머리카락이 다른 부위보다 특히 돋보인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네.

하지만 그 낯선 사람의 칭찬 덕분에 어머니는 그날 온종일 거울 앞에 앉아서 머리를 매만지고 치장하고 감탄하면서 시간을 보냈지.

자네 글도 나한테 꼭 그런 역할을 해주었어.

나는 오후 내내 거울 앞에 서서 나 자신을 찬탄했다네.>

p52~53


나는 폴 오스터 소설을 읽을 때면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거나 혹은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러니까 겨우 끝까지 읽은 게 <달의 궁전>이 고작인데, 그래서인지 이 작가 이름은 꼭 기억한다.

언젠가 읽으려고 꼼져둔 <뉴욕 3부작>도 잊지 않고 있다.

 

<왜 쓰는가?>는 독자평이 그닥 좋지 않고,
책 분량이나 두께에 비해 가격이 비쌌다(과연?).
그럼에도 이 책을 산 것은 그 제목이 주는 여운 때문이다.
나 또한 쓰는 사람으로서, 가끔 왜 쓸까? 하고 스스로 물을 때가 많다. 그렇기에 이미 세계적으로 위대한 작가 반열에 오른 폴 오스터가 왜 쓰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이 책은 30분 만에 읽을 수 있다.
작은 에피소드와 연재글이 실려 있어서
금방 금방 읽히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폴 오스터가 글을 쓰게 된 이유 또한
그 작은 에피소드 중 하나에 들어 있다.
나를 피식 웃게 만드는 소소한 이유가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번역가 김석희 선생님의 문체도 마음에 들거니와
무엇보다 폴 오스터가 <유럽 유대주의>라는 잡지에
레즈니코프(미국 유대계 시인)에 대한 특집글을 기고하고,
그 시인을 만난 이야기와
책 한 권을 썼다는 이유로 생명에 위협을 받는
'살만 루슈디를 위한 기도'가 특히 좋았다.
 
또 폴 오스터가 어렸을 때 60층 아파트 아래서 내려다본 풍경이 하도 신기해서 동전을 던지려고 하자 할머니가 한 말 "안 돼! 그 동전이 누군가에게 맞으면 머리 속으로 곧장 뚫고 들어갈 거야!"가
참으로 유쾌했다.
갑자기 우리 할머니가 떠올랐다.
하늘에서, 잘 계시겠지......
만족할 만한 책이다.

모든 것을 보려면 너무 빨리 걷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좋다.
모든 것을 느끼려면 나는 너무 빨리 살지 않아야겠다.
너무 빨리 오르려고 하지 않아야겠다.
너무 빨리 쓰려고 하지 않아야겠다.
너무 빨리 사랑하려고 하지 않아야겠다.
 

그저 천천히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가며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느끼며 살고 싶다.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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