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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 허기를 달래주는 아련한 추억의 맛
박완서 외 지음 / 한길사 / 2024년 4월
평점 :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는 나에게는 그리운 음식이 없다. 나는 밥티꽃나무를 보며 배곯아 하지도 찾아헤맬 묵밥에 대한 기억도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음식이 넘치다 못해 버려지기도 한다. 매일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오히려 밥 때를 놓치기도 할 정도이다. 그만큼 음식의 종류도 가게도 너무 많아서 풍요가 낳은 고민들을 떠안기도 한다. 심지어 누군가는 넘치는 풍요와 역행하기 위해 부러 식욕을 잠재우는 보조제를 먹기도 한다. 그런 사회에 살고 있으니 그리운 음식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 책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밥티꽃나무의 서글픔을 씁쓸하게 추억하고 묵밥의 슴슴함을 별미로 여길 수 있는 그런 시대를 담고 있는 책이기에 귀하다. 흰 쌀밥에 무뎌지지 않기 위해 거친 감자밥을 택하며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한 그릇을 소중히 여기는 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기에 귀하다. 풍요에 시대에서는 쉬이 발견할 수 없는 진주같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책이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인지라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 다음은 이 속에도 깊은 철학이 담겨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지금의 시대에 대한 고찰까지 해볼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글들이 더없이 귀하게 느껴졌다.
요즘 y2K가 다시금 유행이라고 한다. 지나치게 화려하고 풍요로운 이 시대에서 도피하고 싶은 현대인들의 무의식이 반영된 현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부족할지라도 아끼던 것을 더욱 소중히 여길 수 있던 시절과, 그와는 너무 상반된 시대에 허우적대고 있는 지금. 나조차도 피씨방이 아닌 놀이터에서 흙먼지를 뒤짚어쓰며 뛰어놀던 그 시절이 그리운데 그 옛날의 낭만을 겪어본 이들은 오죽할까.
그런 감정을 다시금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이 책은 그 알맹이를 찾는 데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고작 밥 한 그릇이 무슨 힘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무늬만 유행하는 것이 아닌 당신만의 잊고 있었던, 어쩌면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조차 못했던 감정의 촉수들이 되살아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좋아하는 음식 혹은 그리웠던 음식을 함께 먹으며 책을 읽는 것도 별미일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신비로운 경험이 당신에게도 펼쳐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