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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된 아이 ㅣ 사계절 아동문고 99
남유하 지음, 황수빈 그림 / 사계절 / 2021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무가 된 아이」는 과학소설의 옷을 입고 있지만 결국 어디에선가 이방인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 아이들에게 “괜찮아, 너는 특별하단다.”라고 위로를 전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온쪽이’는 몸이 반쪽만 있는 왼 사람과 오른 사람이 정상인의 범주에 속하는 세상에서 비정상인인 윰쌍둥이로 살아가는 수오의 이야기이다. 아이에게 요즘 많이 읽어주었던 ‘반쪽이’라는 그림책이 떠오르며 그 역발상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에서 작가님의 재치가 느껴진다. 반쪽이를 싫어한 두 형들처럼 좌우대칭인 온쪽이로 살아야 하는 수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선 철저하게 이방인이다. 수오를 ‘특별한 아이’라 불러주었던 엄마를 제외하고는 당연히 그를 정상적으로 바라봐주는 시선은 없다. 그래서 결국 ‘남들처럼, 정상인처럼’ 살기 위해 수오는 한 쪽 사람이 되기 위한 분리수술을 받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결정을 내리는 것은 역시 수오 자신이었다. 엄마가 불러주었던 ‘특별한 아이’는 수오에게는 정상인 아이이다. 그리고 그 정상인 두 발로 한 쪽 사람이 쫓아오지 못할 만큼 빠르게 달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기로 결정한다.
‘나무가 된 아이’는 반에서 왕따를 당하는 필순이가 반 아이들의 괴롭힘을 받다가 어느 날 갑자기 두 팔 벌려 나무가 되어 버린 이야기이다. 그런데 반 아이들에게는 이 황당한 상황이 낯설지가 않다. 2반 현오가 무당벌레가 되고, 3반 수아가 청설모가 되어버릴 동안 선생님과 부모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조차 못한다. 아이들은 어떤 때엔 어른보다 더 잔인할 때가 있다. 필순이의 가지를 꺾고 나무에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서슴치 않고 칼로 새겨놓으며 이미 나무가 되어버린 필순이를 괴롭히는 것을 계속한다. 그리고 그런 필순이를 위로해준 것은 나무에 물을 준 아이이다. 고작 물을 준 것 뿐인데 필순이가 된 나무는 이미 받을 수 있는 위로를 다 받았다는 듯 아이의 어깨에 연두색 나뭇잎을 살포시 떨어뜨려 마음을 전한다. 필순이에게 물을 준 아이가 곁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필순이의 이름을 기억해주고, 필순이의 동생들을 기억해주고, 필순이의 아픔에 응답해준 아이 덕분에 필순이는 어쩌면 선생님과 부모님도 알아차리게 되는 멋진 나무가 될지도 모르겠다.
‘뇌 엄마’는 이번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다. 생물학적인 뇌만 존재해도 그 사람이 실제로 살아있는 것처럼 존재할 수 있다고 설정한 부분이 매우 신선했다. 작가님의 과학적 상상력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뇌에 전극을 연결하여 뇌 주인의 의식을 살리는 미래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지아는 8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엄마를 목소리로, 뇌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뇌 자체가 무서워보여서 다가가지 못하다가 뇌가 들어있는 유리관에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붙이며 점점 엄마와 가까워진다. 하지만 둘 사이에 ‘안아준다, 눈물을 닦아준다, 함께 춤을 춘다’는 말은 여전히 금기어이다. 사랑하는 존재를 죽음으로 잃었을 때 가장 절실하게 떠오르는 생각은 ‘한 번 만 만져보고 싶다, 한 번 만 안아보고 싶다’일 것이다. 그런데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질 수도 없는 엄마가 남편과 딸의 곁에서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게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아는 엄마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과학 기술이 결국 인간을 대신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이렇게 「나무가 된 아이」에는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처럼 살고 있는 많은 아이들이 등장한다. ‘온쪽이’의 수오, ‘나무가 된 아이’의 필순이, ‘뇌 엄마’를 가진 지아, ‘착한 마녀의 딸’인 바이올렛, ‘구멍난 아빠’와 엄마를 가진 지훈이, ‘웃는 가면’의 얼굴을 빼앗긴 아이. 이들 중 “괜찮아, 넌 특별한 아이란다.”라고 직접적인 위로를 받는 것은 수오가 유일하지만 나머지 아이들도 필순이에게 물을 주는 아이처럼 위로가 되는 존재가 곁에 있으리라 믿고 싶다. 그래야 그들이 버티고 견디며 위로받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노래할 수 있지만 춤출 수 없는 엄마를, 눈물을 닦아줄 수 없고, 눈물을 흘릴 수도 없는 엄마를, 그리고 나는 마침내 받아들일 수 있었어. 엄마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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