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아무도 들어오지 마시오 사계절 1318 문고 118
최나미 지음 / 사계절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커튼으로 창문을 가리며 경악하는 소년, 다양한 종류의 화분, 액정이 깨진 스마트폰, 여행가방을 끄는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의 손.. 표지에서 살펴볼 수 있는 요소들은 모두 이 책의 핵심 소재이자 등장인물이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아야 할 소년의 집에, 소년의 마음 속에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

단순히 사춘기 소년이 겪을 법한 자기만의 세계나 반항이러니... 크게 기대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숨에 178쪽을 읽게 만드는 힘은 우리도 한번쯤은 겪어 봄직한 이기적 자아와의 갈등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하는 과오.
의도하지 않았지만 반성해야하는 언행.

여기서부터 우리는 자유로워지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 오히려 밀접한 관계를 인정하고 바라볼 때 진정한 자유 속에서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걸 배우게 한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석균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두문불출하고, 심지어 한낮에도 거실 커튼마저 모두 치고 몸과 마음을 어둠에 내버려둔 삶을 살고 있다. 뭔가 해야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견디지 못해 폭식과 인스턴트 식사로 속을 뒤집어 놓는 통에 아빠와도 서먹한 관계인 채 10달 넘게 시간만 흘러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1층에 화단도 크고 햇빛이 잘드는 석균의 집이 좋다며 갖은 에피소드를 핑계삼는 독특한 할머니(아니,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와의 3개월 동거가 시작되는데, 자기 영역을 침범한 할머니와 석균의 신경전은 번번히 할머니의 승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무미건조했던 석균의 삶에 퐁당! 작은 파장이 생긴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정상적인 삶을 향한 첫걸음 이기도 했다.

그런 할머니와 공조할 일이 생긴 건 '최형은'이란 사람이 보낸 엄마의 깨진 스마트폰 택배를 받고부터다.

이 소설은 이 순간부터 점점 추리와 긴장감을 가지고 전개된다. 그가 누구인지 추적하며 석균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한 아이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과연 그 아이는 석균과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네가 의도하지 않았다는 거, 나는 믿어. 하지만 의도하지 않아도 결과가 있고 피해를 본 사람이 있잖아. 무엇보다 넌 피해자가 아니고. 당사자는 그 일로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다른 사람은 절대 알 수가 없어."-141쪽

우린 가끔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타인의 아픔을 외면한다. 아니, 우리가 어떤 액션을 취하지 않았었다는 이유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기를 거부한다.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크고 뾰족한 비수가 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석균이처럼 그저 자신의 추리로 용의자를 지목했을 뿐이고, 그 결과 추리가 틀렸을 뿐이란 인과관계 사이에는 엄청한 사건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피해자가 그 과정 속에서 직접적인 괴롭힘을 준 제3자들보다 지목한 당사자인 석균을 가장 원망하게 되는 건 자연스런 이치다.

우리 마음 속의 양심은 뾰족함을 지닌 별모양이어야 한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많은 뾰족함을 가진 상태가 되어야 양심이 제대로 작동한다. 조금만 닿여도 찔림을 느끼고 반성하는 생활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뾰족함은 동시에 금새 닳아서 원이 되기도 하다. 그래서 무뎌진 양심은 타인은 물론 자신의 잘못까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마구 짓밟고 다니려 한다.

석균이와 같이, 그 친구들과 같이 우리도 그 중 하나였던 경험은 있다.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양심의 별을 작동시켜 찔림을 인정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할 수 있다면 누군가는 말 한마디, 시선 하나에 의해 삶마저 포기할 수 있는 일을 막는 약해보이지만 가장 강하고 긍정적인 힘이 될 것이다.

석균에게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는 강한 외침은 오히려 누구든 들어와달라는 SOS가 아니었을까?

여운이 남아 다음 책을 선뜻 들지 못하고 생각에 잠기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