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의 뜰
강맑실 지음 / 사계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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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과 풍경을 직접 그리고, '막내'로서의 삶을 회상하며 작가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196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낸 작가가 나이가 들어도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게 신기해서 집의 평면도를 그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강맑실'이라는 이름이 필명인가 싶을 정도로 형제자매들의 이름도 참 '순수'하다. 별언니, 밝오빠.. 부모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일곱 명의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셨을까 생각하며 책을 펼치게 한다.

"누구에게나 유년 시절은 있다."(5p.)는 말처럼 누구나 가진 다양한 형태의 유년 시절을 대부분의 우리들은 기억 속에만 담아두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때로는 기억의 한 조각이 어디론가 빠져서 헤매는 경우도 있다. 그런 기억들이 오롯이 잘 남아있도록 책으로 엮어낸 작가의 도전과 실천 덕분에 이 책을 만난 독자들은 '유년행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부터 띠지(책표지를 하단을 둘러싼 종이)에 그려진 평면도와 정원 그림을 보며 '나'의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집에 대한 생각에 잠긴 채 한두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이에 더해서 어린 시절 앨범까지 찾아보며 아예 방바닥에 주저 앉아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 책을 읽을 몸과 마음의 준비가 다 된 기분일 것이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막내'는 열한 살이 될 때까지 열 개의 집에서 살았다. 그 중 일곱 개의 집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문득 나는 이사를 몇 번 다녔더라? 생각해봤다. 열한 살이 될 때까지는 4번, 20살이 될 때까지는 총 7번이었다. ^^ 그런데 더 심한(?)건 우리 꼬맹이는 거의 해마다 이사를 다닌 꼴이니 수많은 이사 경험마다 뭔가 추억이 될 만한 일들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대부분의 집이 학교 관사인 것을 보며 또다시 내 경험 속에 빠져들었다. *강화도로 전근오면서 한 가지 기대했던 것은 몇 년만 기다리면 관사가 제공된다는 거였다. 그러나 8년 만에 순서가 되서 받은 가족관사에서 딱 한 달 살다가 도망치듯 나온 경험이 있다. 얼.마.나!! 추운지.. ㅜㅜ 집 안에서도 입김이 보이고, 침대마다 1인용 텐트를 설치하지 않으면 포근하게 자기 힘들었다. 그런 힘들고 추운 기억만 가득한 관사였기에 작가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머물렀다는 집 중 '관사'에 대한 기록에서 혹시나 이런 경험이 없을까 살펴보았지만 다행히 전남 지역의 관사는 상황이 좋았는지 그런 내용은 없었다. 그래서 한 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관사에서의 행복한 삶을 꿈꿨던 내가 겪지 못한 것을 작가의 경험을 통해 대리만족할 수 있었다.

이렇듯 이 책은 한 챕터를 읽거나 하나의 에피소드를 읽을 때마다 독자도 자신의 경험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래서 책을 읽는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마치 책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기분이 들어서 여유로운 독서시간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요즘에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자 대가족이기에 가능한 유쾌하고도 으악! 소리지르게 만드는 목욕행사 경험을 읽으며 작가의 가족들만이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한 달에 한 번 목욕탕 물을 데워 목욕하는 건 막내네 식구들에게 자그마한 월례 행사였다. 물이 데워지면 아버지가 제일 먼저 목욕을 했다. 그리고 큰언니, 작은언니, 큰오빠, 작은오빠 순으로 때를 밀었다. 그때마다 탕 안에는 둥둥 때가 떴다. 엄마는 뜰채로 때를 걷어내고 탕 안의 물이 줄면 다시 찬물을 붓고 아궁이에 불을 땠다. 한 사람이 탕 밖에서 때를 벗기며 씻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탕 안에서 때를 불렸다. - 후략

막내의 뜰 - 37p.

이 부분을 가족들에게 읽어줬더니 다들 '으웩~'하며 웃는다. 가만히 미소 지으시던 어머니께선 "야야.. 그 때는 그렇게라도 목욕할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건데 그러냐~ 몸을 뿔려서 때를 밀 수 있는 환경이면 잘 산거다~"라고 말씀하신다.

온 가족의 목욕을 위해 열심히 물을 데우고, 때를 걷어내는 정성을 보여주신 작가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고, 순서대로 목욕하며 느꼈을 7남매의 왁자지껄한 풍경들도 그 자체로서 소중한 기억이겠다 싶다.

막내 너는 저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막내의 뜰 45p.

막내라면 이런 말을 한번 쯤 들어보지 않았을까? 언니오빠들이 막내에게 다리 밑에서 주워 온거라고 놀릴 때 아니라며 울기만 했던 어린 아이의 모습에 내 모습이 교차되어 보였다. 나도 어릴 적 언니들이 이런 말을 해서 엄마께 물어볼 용기도 내지 못하고 집 밖의 벽에 기대어 쭈그리고 앉아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옷을 사오신 아빠가 유난히 그날따라 두 언니들은 같은 스타일로 사오셨지만 내 것만 달랐던 것도 신경쓰였던 날이었다. 그렇게 한참 울다 나를 발견한 엄마 품에 안겨서야 겨우 물어봤다. "엄마, 진짜로 저를 다리 밑에서 주워오신거예요?"라고... 당시 엄마께선 그렇게 놀린 언니들을 혼내시고 나를 꼭 안아주셨다. 막내이기에 그런 놀림이 사실처럼 들릴 수밖에 없는 그 기억도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였다.

엄마, 나 오늘 머리 잘라도 돼? - 모기만한 소리로 막내가 물었다. 정신없이 항아리를 닦던 엄마는 건성으로 - 응, 그려 알았다잉 -했다. 막내는 엄마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문을 박차고 언덕 아래에 있는 미용실로 달려갔다.

막내의 뜰 170p.

뭔가 하고 싶은 일인데 부모님께서 반대하실 것 같으면 에둘러서 말하거나 들릴랑 말랑한 목소리로 물어보고 대충 대답하시자마자 행동 개시하는 그 마음이 너무나 공감이 됬다. 막내는 얼마나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었을까? 심지어 외상으로 미용을 마치고 짧은 단발머리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스치는 그 기분이 얼마나 상쾌했을까? 물론 집에 돌아온 막내를 본 엄마는 한바탕 호통을 치신다. ^^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까?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사먹고 싶은 마음에 엄마께서 낮잠을 드신 순간 귀에 대고 쬐그맣게 속삭였다. "엄마, 저 500원만 주세요!" 당시엔 하루 100원이면 50원짜리 과자를 2개나 사먹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잠에 취한 엄마는 "어,어 그래~"하고 주무셨다. 바로 지갑에서 500원짜리를 꺼내서 친구와 놀러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날 오후 구멍가게에서 1원짜리 눈깔사탕도 잔뜩 사고, 10원짜리 라면과자도 마음껏 사고, 50원짜리 100원짜리 음료수도 사서 친구들에게 한 턱(?) 쐈던 날이었다. 물론, 집에 돌아와서 엄마의 반응은 ^^ 다행히 혼내시진 않으셨다.

작가의 경험과 독자의 경험을 번갈아가며 읽고, 생각하며 읽다보면 어느덧 책의 마지막이 보인다. 명절날 가족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면 곁에서 듣다가 맞장구를 쳐 주기도 하고, "아니여, 그건 이랬제."하며 중간에 끊어진 칠형제의 유년의 기억을 촘촘히 이어주던 분이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부모님이 이어주신 기억의 연결고리 덕분에 막내의 기억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이제는 칠형제의 이야기 속에, 기억 속에, 마음 속에만 남아계신 부모님을 추억하며 작가의 유년 시절 이야기도 마무리를 짓는다.

작가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 "엄마의 유년을 들여다보며 자신들의 유년은 어떻게 떠올릴지 궁금하고, 아이들의 유년 속 나는 어떤 엄마일까."라고..

이 말은 독자의 마음에도 고스란히 남을 것 같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에게 어떤 부모로 기억될 것인가..? 간단한 질문 같지만, 어떤 부모로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책을 덮는 그 시점부터 삶의 진지한 목적과 나의 삶도 살펴보게 한다.

★ 교사서평단, 김혜연의 100자 평

- 작가의 유년의 기억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나의 유년을 떠올리고,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나의 자녀들까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참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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