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아편 세창클래식 14
레몽 아롱 지음, 변광배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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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계기는

국내에 돌아다니는 레몽 아롱의 상당히 자극적인 문구 한마디 때문이다.


"정직하고 머리 좋은 사람은 절대로 좌파가 될 수 없다. 정직한 좌파는 머리가 나쁘고, 머리가 좋은 좌파는 정직하지 않다. 모순투성이인 사회주의 본질을 모른다면 머리가 나쁜 것이고, 알고도 추종한다면 거짓말쟁이다."

상당히 자극적이지 않은가?


헌 데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레이몽 아롱은 그가 적극적으로 비판했던 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 지적 적수이자 라이벌 관계이긴 했지만, 그와 벽을 쌓고 마치 원수처럼 싸운 관계는 아니었다. 아롱은 말년까지 사르트르와 교유 관계를 유지했고, 그와 비록 사상적 방향은 달랐으나 지적 교류를 이어갔던 사이였다.

무엇보다 《지식인의 아편》의 중요한 핵심 주제가 지식인이 가질 수 있는 편협함과 교조적 경색의 문제를 비판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내용의 책에서 과연 저런 문구가 나올 수 있을지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해당 문구는 이 책에서 전혀 등장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 책의 관련 주제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심지어 이 책은 프랑스 지식인들이 빠져있던 당대 사회의 좌파적 지평,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굳건한 유토피아에 대해 상당히 세심한 경고를 날리고 있는 지적 연구의 산물이다.

레이몽 아롱은 자유주의자로서, 이러한 지식인들의 경색된 행태에 안타까움을 표시할 뿐, 그것을 조롱하거나 적대하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소련을 중심으로 레닌-스탈린주의의 현실적 문제를 어떻게든 포장하려는 행태를 지적하면서도, 그의 대안책으로 제시할만한 북유럽의 조합주의적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지점을 파고들만큼 유연한 사고를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레이몽 아롱의 견해는 경색된 유토피아주의에 빠진 마르크스주의 실망하여 작심하고 비판에 나선 자유주의자의 모습이다.

이는 비슷한 길을 택했으나 사뭇 다른 경로를 탔던 또다른 지식인 조지 오웰을 떠올리게 한다.


조지 오웰 역시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통해서 좌파의 잘못되고 편협한 행태가 극우적인 여론을 부르는 방식에 대해 비판하였고, 평생 소련과 중국을 위시한 독재적 공산주의 방식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자부할만큼 평생 사회주의자였고 좌파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학자였다. 이는 곧 그의 지적 후손들에 의해 '오웰주의'라 부르는 한 가지 대안 좌파 노선의 탄생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레이몽 아롱의 주장은 현재 사르트르의 철학이 몰락하고 프랑스 철학판에 다시금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으면서 부활한 하나의 자유주의적 노선으로서 부를만하고, 그 핵심에 바로 《지식인의 아편》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꽤나 여러 측면에서 교조적 유토피아의 위험성을 경계했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좌파들조차 자신들이 믿는 '개념'에 대해 전혀 통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프롤레타리아'와 같은 일반적 마르크스주의 개념을 말할 때조차 그들은 분열했고, 어떻게 다뤄야할 지 감도 못잡았으며, 심지어 그 사상이 바라는 방향과 정반대 지점으로 향하고 있을 때조차 탈선된 선로를 고치기는커녕 애써 변명만 일삼는 행태를 보일 정도로 충분히 '좌파'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랑스 내 좌파 지식인들이 그러한 말장난을 하는 동안, 도리어 노동자 계급의 진보는 영국과 같은 자유주의 진영에서 혹은 북유럽과 같은 조합주의적 사회주의 진영에서 더 큰 영광을 누렸다. 반면, 프랑스의 상태는 그들을 전혀 쫒아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롱은 거대한 모순을 느꼈다.


아롱의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마르크스주의를 어떻게든 지켜내려고 하면서, 눈 앞의 현실을 부정하고 포장하던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경색되고 교조주의적인 신념이 하나의 마약, 즉 '아편'과 같다고 보았다.


교조적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비판서를 생각하니 《지식인의 아편》을 역시 자유주의자이자 아마 아롱보다는 더 보수주의에 가까운 칼 포퍼의 《열린사회의 그 적들》을 비교할 수 밖에 없다.


본인은 만약 둘 중 한가지 책을 먼저 골라야 한다면 아롱에게는 미안하지만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먼저 일독하라 권하고 싶다.

이들이 비판하는 것은 공통적이지만 접근 방식에는 꽤나 차이가 있다.


《지식인의 아편》은 아무래도 그 범위가 꽤나 한정적인데, 당대 전후 프랑스의 지식세계의 편중 사태를 집중 조명하다보니 아무래도 현상학적인 특징이 강하다. 때문에 냉전 체제를 지나 소련의 붕괴와 함께 미국 자유주의의 승리와 세계화의 선언이 있었던 90년대 "ZERO YEAR(《0년》, 이안 브루마, 글항아리)"의 희망이 솟구치던 시대가 도래했으나, 결국 리먼 사태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미-중 신냉전 체제가 다가온 지금 확실하게 그 내용을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있다.


반면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보다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근본적 철학의 문제에 접근한다. 그는 고대의 플라톤과 근대의 마르크스를 꺼내서 그 사상을 철저히 분석하며 이 사상의 근본적 모순과 오류를 짚어냈다. 단순히 당대 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의 장본인이 될 만한 사상적 원천을 찾아 거기서부터 반박을 시작한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분명 포퍼는 플라톤의 《국가》를 비판하고 있음에도 그 누구보다 훌륭하고 쉽게 《국가》를 해설하고 있다. 그래서 읽다보면 마치 비록 비판적 관점이라고 하나 내가 플라톤의 《국가》를 상당히 재밌게 읽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런 점에서 당대 시기의 현상학적 접근을 한 아롱의 《지식인의 아편》은 충분히 훌륭한 논점의 책이지만, 근본적 원천을 비판한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과 비교해 같은 주제에 대한 생명력이 조금은 짧다고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 책이 별로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교조주의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즉 경색된 사고, 믿고 있는 신념을 어떻게든 버리지 못하는 태도, 상대에 대한 이분법적 접근 등. 

자유주의자 아롱의 사상은 특히 극단적 양분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는 좌우를 막론하고, 자신이 믿는 것이 무조건 '정의'다라고 외치는 우리의 모습에 폐부를 찌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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