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루비
박연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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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시인의 소설을 어려워 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만만치 않았다. 세번이나 읽었는데, 책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느낌이랄까? 여름인데 왜 푸른빛이 도는 보석이 아니라 붉은 루비인 것인지, 어째서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여자들인지, 소설 속 소재목들이 의미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특별히 쉐이딩이 되어 있는 페이지 (지나간 미래, 미래에도 하지 못할 이야기)는 또 어떤 의미인지. 짧은 소설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이런(?) 소설은 독서모임을 통해서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계속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그 동안 읽었던 성장소설 속 많은 인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8살이 되어 아버지와 살게 되었음에도 스스로가 독립했다고 생각하는 여름의 모습에서 <자기 앞의 생>의 모모, <아홉살 인생>의 여민이 떠오르기도 했고, 서로를 아끼면서도 질투하고, 모른척하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는 여름과 루비에게선 <나의 눈부신 친구> 속 레누와 릴라도 만났던 것 같다.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름과 루비는 만나지 못했지만 말이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여름과 루비는 충분히 서로에게 눈부신 친구가 되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유년이 시절이라는 것. 유년은 '시절'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 컸다고 착작하는 틈을 비집고 돌아와 현재를 헤집어놓는다. 사랑에, 이별에, 지속되는 모든 생활에, 지리멸렬과 환멸로 치환되는 그 모든 숨에 유년이 박혀 있다. 붉음과 빛남을 흉내낸 인조보석처럼. 박혀 있다. 어른의 행동? 그건 유년의 그림자, 유년의 오장육부에 지나지 않는다. - p.80

유년의 그림자. 여름에게 루비는 사랑을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자신은 사랑이라고 생각했기에 자기를 꼬집어도 참아야 한다고 했던 첫사랑(?)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누군가를 위해 용감이 나서주는 루비를 통해서 알게되고, 사랑을 받았을 때 그 마음을 함부로 여기면 그 사랑이 떠나갈 수 있음을 마지막에 알려준다. '처음'이 사라질 때 즈음, 그때부터 인간은 '뒤'를 생각하다 잠든다(p.129)더니 말이다. 받는 것에 익숙해 졌을 때, 그 감정에 소홀해 졌을 때, 사랑은 떠나간다. 할머니가, 아빠가, 루비가 그랬고, 여름은 이제 다음 사랑(준식이나 학자가 아닐까?)을 찾게되는 것 같다. 

나는 깜빡인다, 세상에서, 아주 작은 점처럼 깜빡이며 존재한다. 늘 존재할 수는 없다. 욕심쟁이들만 늘 존재한다. 나는 존재하는 것을 깜빡 잊는다. 잊는다는 것을 또 잊는다. 자주 울고, 웃는 것을 잊었다고 생각할 때만, 잠깐 웃는다. - p.19

깜빡이는 아주 작은 존재, 내가 발견한 존재, 나를 발견한 존재를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웃는 것을 잊었다고 생각할 때, 잠깐 웃게 하는 존재 말이다. 어쩌면 모두가 영원하지 않았기에 "유년"속에 박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미옥이 말했다. 

너네 말이야. 걱정이 생기잖아? 그럴 땐 딱 하나만 생각해. 가장 원하는 게 뭔가. - p.61

우리가 가장 원하는 건, 하필이면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변한다. 책속에 등장하는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갈구하지만, 각자의 이유로 사랑에 실패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다음 사랑을 이어간다. 그것이 우리를 잠깐 웃게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내가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루비를, 누군가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계절 여름을 사랑할지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도 항상은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은 그 보석을, 그 계절을 사랑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들이 사랑받는 총량은 동일할까?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힘든시간을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모든 이별은 언덕 위에서 이루어진다. 사소한 이별이라 해도 그게 이별이라면, 올라선 곳에서 내려와야 한다. 내려오기. 그게 이별이다. - p.197

소설은 이별로 끝을 맺지만, 책을 덮음과 동시에 다시 올라갈 준비가 된 느낌이다. 왠지 이번 여름은 한번쯤은 사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일곱 살 때 나는 ‘작은‘회사원 같았다. 하루하루가 길고 피로했다. 맡은 임무가 있었지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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