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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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넛셸>을 통해서 뱃속의 태아를 통해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이언 매큐언의 놀라운 상상력은 이번 신간 <바퀴벌레>를 통해 또다시 정점을 찍은 것이 아닐까 한다. 정치인들을 바퀴벌레에 이입할 줄이야. 더러운 환경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존재.

그날 아침 영리하지만 전혀 심오하지는 않은 짐 샘스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거대 생물체로 변신해 있었다.

- p.13 소설의 첫문장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 하는 이 첫문장은 실상 바퀴벌레가 사람으로 변신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리가 네 개뿐이었고,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니 말이다. 놀랍게도 이렇게 사람으로 변신한 바퀴벌레는 영국의 총리였다.

소설 <바퀴벌레>에서는 바퀴벌레들이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탈을 쓰고 급진적 각료로서 국가경제의 방향을 180도 변화시키는 결정을 내린다 : 역방향주의. (돈의 흐름을 역행. 물건을 사면 소비자에게 돈을 주고, 일을 할 때는 내가 돈을 주고 일을 해야함. 실재로 있는 것인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당장 코앞으로 봤을 때는 마치 시민들에게 이익이 될 것 같고, 경제를 부응할 것 같은, 거기에 당장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것 같은 대중영합적인 역방향주의로 경제정책을 선회하지만, 그들은 이 경제 정책이 결론적으로 국가를 무너뜨릴 것을 알 고 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국민들의 관심을 ‘애국’이라는 명분하의 국가대 국가문제 (영국 VS 프랑스), 확실한 적을 만드는 것으로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인간이야 어찌되었건, 이 일련의 일들은 바퀴벌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빈곤이 찾아오면 바퀴벌레의 세상이 된다. 바퀴벌레들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탈을 벗어던지고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착하고 성실한 보통 사람들이 그동안 속았고 앞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다른 착하고 성실한 보통의 존재인 우리가 더 번성하고 더 큰 행복을 누리게 되리란 사실을 알게 되면 커다란 위안을 받을 것입니다. 전 세계적 행복의 총량은 줄지 않을 테니까요. 정의는 불변하는 것입니다. - p.123 중에서

사실상 정치가 그런 것이 아닌가? 2016년의 촛불집회를 통해 정권의 교체가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과연 우리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피부로 와닿았는지는 미지수이다. 우리는 여전히 힘들다. 그럼에도 정치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권 교체로 인해 권력의 중심이 바뀌었고, 그를 통해 자신들만의 이익을 챙겨가는 또 다른 사람들이 생겨났다. 과연 정치인들이 바퀴벌레랑 다를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선거를 위한 선심성 행정에 우리 스스로 눈과 귀가 멀어버리는 건 아닌지. 툭하면 불거지는 국방, 대북, 대중, 대일 정책들로 보아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당장 코앞의 것만 보는 것이 과연 정치이고 정책인 것인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자신과 다른 존재(책속에는 원래부터 인간이었던 외무부 장관 베네딕트 세인트존)로 배제시켜 버리는 것이 정치이고 정책 결정의 방법인 것인지. 이 책은 2021년의 지구촌 정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핵심 신념은 변함이 없습니다. - p.122

이제 여러분도 알게 되었겠지만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로 사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욕망은 너무도 번번히 그들이 지성과 충돌합니다. - p.124 중에서

이 책속의 역방향주의는 과연 놀라운 아이디어임과 동시에 전지구가 하지 않는 이상, 선택한 국가를 고립시키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책속에 등장하는 영국에서 이를 선택한다는 것은 어쩌면 브랙시티를 선택한 지금의 영국을 빗댄것이 아닐까한다. 기술의 발달 등으로 이제 세계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시대에, EU에서 나오면서 자국 위주의 국가주의, 고립주의에 빠져버리게 된 영국. 국민투표로 인한 결정이었다지만, 인구수에서 밀려 브랙 시티에 반대했음에도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젊은 세대들의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거기에 동조했던 미국 트럼프 정부의 모습까지. 바퀴벌레만도 못한 정치인들을 힐난하며 비웃고 있지만, 우리는 또 그들을 어쩌지 못한다. 결국 화이트홀로 가는 그 많은 바퀴벌레 무리 중에 한마리만 차에 깔리지 않았던가? 한명의 정치인이 잘못에 대해 혼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지만, 그들의 생명력은 견고하다. 바퀴벌레들처럼 말이다. 이렇게 완벽한 책제목이라니.

왜 이런 일을 하십니까? 왜, 무슨 목적으로, 당신은 나라를 분열시키는 겁니까? 왜 당신은 가장 가까운 우방국들에 이런 요구들을 하며 우리를 적으로 돌리는 겁니까? 왜? - p.109 독일 수상이 영국 촐리에게 하는 말.

과연 누가 이에 합당한 답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역시나 감탄을 자아내며 읽을 수 밖에 없었던 책이다. 포퓰리즘, 고립주의, 만들어진 언론, SNS를 통한 정제되지 않은 정치인들의 언행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 125페이지의 중편을 이렇게 공들여서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어톤먼트 Atonement>를 통해 알게된 작가였고, 그 책을 그 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관심 밖에 있었던 작가였다. 우연한 기회에 읽게된 <넛셸>과 <바퀴벌레>로 인하여 그에 대한 나의 시각에 변화가 생긴건 확실하다. 작가의 연륜이 현실을 빗대어 그려내는 이야기들. 아마도 그의 책들을 더 찾아서 읽어보게 될 것 같다. 이제는 믿고 읽는 나의 인생작가가 된 것 같다.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로 나에게 놀라움을 주실지, 벌써 신간이 기대된다.

착하고 성실한 보통 사람들이 그동안 속았고 앞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다른 착하고 성실한 보통의 존재인 우리가 더 번성하고 더 큰 행복을 누리게 되리란 사실을 알게 되면 커다란 위안을 받을 것입니다. 전 세계적 행복의 총량은 줄지 않을 테니까요. 정의는 불변하는 것입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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