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로드
조너선 프랜즌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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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 힐데브란트 부목사의 6명 가족 개개인의 이야기들이 866페이지의 서사를 만들었다. 시대적 배경이 70년대임에도 이 가족은 흔히 말하는 콩가루 집안이다. 가족간의 배려나 사랑보다는 모두가 각자의 삶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으며, 이들에게 가족은 남들보다 못한 존재로 여겨지는 듯 하다. 크리스마스의 선물(?)같이 다가온 가족들의 고난에도, 서로를 도와줄 수 있는 기회들도 눈감고 지나치고 만다. 러스의 가족은 결국 가족으로써 부활하지 못한다.

부모님이 불행하시다니 유감이지만, 내가 그걸 나아지게 할 수는 없어. 설령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도 말이야. 난 두분한테 그렇게 중요하지 않거든. 부모님은 부모님의 선택을 했고, 오빠는 오빠의 선택을 했고, 나는 내 선택을 했어. 최소한 우리 중 한 명은 자기 선택에 만족하고 있고. - p.852 베키의 편지 중에서

책 표지에서 가족들이 기도하는 사진에 붉은색 "X"표가 되어 있는 건 이 가족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2001년 <인생 수정>을 통해서 냉소적인 가족극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고 하는 작가의 "가족"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은 이 책 속에서도 고스란히 들어났다. 가족들이 만나서 하나의 길로 합쳐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모두 각자의 길을 갔다. 클램에게 모든 것을 의지했던 베키조차도 자신의 마음을 끄는 태너를 만나면서 클램으로부터 멀어졌다. 베키는 신을 만났다고 했지만, 자신의 부모와는 등졌다. 메리언에겐 자신과 닮은 폐리가 마치 아픈손가락처럼 보이지만, 페리를 돌보는 대신 자신의 옛사랑을 만나는 일에 집중했다. 러스 역시 프랜시스로부터 페리가 대마초를 판다는 사실을 들었음에도 프랜시스의 마음을 얻는 것에만 집중할 뿐 아들을 버려뒀다. 결국 메리언과 러스의 아들, 페리는 마약에 찌들어 정신병원까지 가게되고 만다. 과연 이들을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 "가족"이라는 정의가 "길을 건넌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가족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봤을 때, 자신있게 내 삶을 포기하겠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가족 사이에서도 점차 개인주의가 만연해지면서 21세기 "가족"의 정의가 달라져야 할지도 모른다. 단지 혈연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고 도움을 줄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진정한 가족은 아닐지. 작년 이맘때 쯤 읽었던 황두영 작가의 <외롭지 않을 권리>가 생각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책속에는 중심이 되는 "가족" 외에도 마약, 여성주의 운동, 인종차별, 빈곤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뤄지고 있지만, 책을 읽는 동안 책 제목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던 것 같다. 단순히 책속에 등장하는 제일 개혁 교회의 청소년부 이름으로써 <크로스로드>가 아니라 다양한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다.

영어 "Crossroads"는 사거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두게의 길이 엇갈려 지나가는 곳. 이 책속의 인물들은 대림절과 부활절 기간 지속적으로 서로를 가로질러 지나가고, 그로 인해서 영향을 받는다. 러스가 프랜시스와, 클램이 동생 베카와, 페리가 누나 베카와, 베카가 태너와.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마주치는 지점은 매우 중요했다. 서로가 마주치는 지점에 대해서 각자가 얼마나 다르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오해를 하는지, 그리고 그 지점을 지나 각자는 또 어떻게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되는지. 가족임에도 개개인은 매우 다르며, 그들은 그 어떤 일에도 결코 하나로 합쳐지진 못했다. 단지 인물들이 마주친 지점 뿐만 아니라, 만남에 이르는 길 동안의 이야기들, 그리고 만남 이후의 이야기까지 보여졌기 때문에 콩가루 집안이라고 욕하면서도 각 캐릭터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하게 되고 조금 더 몰입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길 위의 여정에서 만나는 "크로스로드"는 이 책의 제목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듯 하다.

"crossroads"는 "cross roads"로 "길을 건너다"로도 읽힐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의 길을 건넌다. 러스는 프랜스시와 결국은 관계를 맺게되고, 메리언은 첫사랑이나 다름없었던 브래들리를 LA까지 찾아가서 만난다. 클렘은 베트남 지원이 힘들어지자 남아메리카로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해 떠나고, 폐리는 안타깝게도 대마초를 넘어 코카인까지 마약에 손을 뻗쳐 화재를 내고 정신병원에 갇히기까지 한다. 종교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던 베키는 본인이 신과 만났다고 믿게되면서 종교적인 사람이 되고, 태너에게만 집중하면서 모양만 종교적인 자신의 부모들과는 멀어진다. 어쩌면 성장이라고 표현되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각각의 인물은 어느덧 하나의 길을 건넜기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다중적인 의미로 사용된 <크로스로드>라는 제목이 이 책의 핵심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주치고, 극복하고,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는 "길". 각자의 길을 가면서 이제 어쩌면 멀어지는 일만 남은 러스의 가족.


이 외에도 이 책은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너무나 다른 6명의 러스 가족외에도 러스의 외도 상대가 되는 프랜시스, <크로스로드> 청소년부를 이끌고 있는 릭 앰브로즈, 베키가 빠져드는 태너, 태너의 옛여자친구 로라, 클램의 여자친구 새런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굉장히 입체적이고 하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 러스가 앰브로즈에게, 베키가 페리에게 가졌던 질투심, 메리언이 페리에게 가진 죄책감과 자기연민, 페리가 가진 인정 욕구와 불안 등 다양한 감정들은 숨기고 싶어하지만 다양한 형태로 결국은 들어나고 만다. 각각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이중성이 이해가 되다가도 어느 순간 역겹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 속에서 내 모습을 보게 되면서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착하게 살겠다는 것이 페리의 새로운 결심이었다.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덜 나쁘게 살자는 것이. 비록 이런 결심을 했다는 게 애초에 페리의 마음 이면에 악이 깔려 있으며 그 악을 뿌리 뽑기가 아주 힘들다는 뜻이었을지도 모르지만. - p.41


짦은 가족사 속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다니, 조너선 프랜즌에 대한 극찬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가족, 관계, 그리고 결국은 나를 바라보게 하는 이 책은 70년대를 배경으로 쓰여졌지만 너무나 21세기적인 고민을 하게 한다. 감히 두께에 주눅들지 말고 인물 하나 하나의 챕터들을 천천히 읽어가보길 추천한다. 어느 순간 당신도 모르게 책의 읽는 속도가 빨라질지도 모른다. 그 하루에 러스가 아닌 메리언의, 메리언이 아닌 베키의, 베키가 아닌 페리의, 페리가 아닌 클렘의 삶이 궁금해질테니 말이다. 책을 덮었을 때의 안타까움이 가족, 관계, 나를 돌아보게 했던 것 같다. 모두의 완독을 응원한다.


부모님이 불행하시다니 유감이지만, 내가 그걸 나아지게 할 수는 없어. 설령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도 말이야. 난 두분한테 그렇게 중요하지 않거든. 부모님은 부모님의 선택을 했고, 오빠는 오빠의 선택을 했고, 나는 내 선택을 했어. 최소한 우리 중 한 명은 자기 선택에 만족하고 있고. - P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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