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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렘 셔플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0월
평점 :

올초 <니클의 소년들>로 주목을 받았던 콜슨 화이트헤드의 따끈한 신작이 발표되었다. <니클의 소년들>에서는 청소년 보호소에서 행해지던 불평등한 처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엔 흑인들의 구역이라 일컫는 할렘에서 비지니스를 하는 레이먼드 카니의 이야기를 통해 1960년대 흑인들의 이야기를 한다.
어쩌면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건 봉투가 아니라 원한과 보복일지도 모른다. - p.275
뉴욕 할렘 125번가 가구점을 운영하는 레이는 겉으로는 평범한 가수 판매상을 하고 있지만, 아버지의 영향과 사촌 프레디가 가져오는 불법적인 장물을 판매하면서 사업을 조금씩 확대해 나가고 있다. 벗어날 수 없는 숨기고자 했던 불법 행위들(장물 중계거래)과 다가가고 싶으나 다가갈 수 없어 원한과 복수심만 들게 하는 모두가 아는(들어난) 불법 행위들(봉투)로 카니의 삶은 위태로워진다. 성공을 위해 불법을 자행하지만, 그런 행위들이 끝없이 카니의 발목을 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니는 쉽사리 그 끈을 놓지 못한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범죄자의 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카니가 보기에 인생은 지금껏 배웠던 방식대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온 곳은 정해져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것이다. - p.24
책의 제목 <할렘 셔플>은 어쩌면 레이 카니의 삶을 두 단어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평생을 보낸 장소인 할렘. 그리고 그곳의 삶을 나타내는 단어 셔플(Shuffle). 사전에서 셔플을 찾아보면 흥미로운 두가지 의미가 있다. 1. 카드놀이에서 카드를 잘 섞어 그 순서를 바꾸는 일. 2. 원하는 방향으로 한 발을 움직이고 나서 다른 쪽 발을 앞쪽으로 움직이는 것이지만, 옆으로 움직이거나 전진할 때 처음 움직였던 발 앞쪽으로 다른 발이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
사촌은 그와 다른 길을 택했다. (중략) 세월이 흐르며 서로 다른 길로 나뉘었다. 길 건너편에 나란히 서 있는 건물들처럼.
다른 사람들과 세월이 그들을 원래의 모양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었다. 도시는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전부 다 여기저기로 보냈다.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자신이 어느 정도 결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른다. - p.197
이 소설 전반에서 카니의 삶은 마치 카드가 뒤죽박죽 섞여 버린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글도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지 않고 이야기가 섞여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카니는 어떻게든 순서를 정리해보려고 애쓴다. 가족을 위해, 사촌 프레디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합법적인 일과 불법적인 일들의 카드를 이리저리 잘 섞어 불법적인 것들은 잘 가려보려고 한다. 특히,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아온 아내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말이다.
그와 동시에, 카니의 움직임은 한발의 움직임 앞으로 다른 발이 넘어가지 않는다.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욕심 부리지 않고 움직인다. 카니의 움직임은 범죄자 집단을 대할 때 뿐만 아니라 장인의 집안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움직임은 일정 선을 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처세술이었다.
그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은 게 실수였다. 그를 만들어낸 환경이 상관없다고 믿은 게, 혹은 그 환경을 넘어서는 게
더 나은 건물로 이사 가거나 똑바로 말하는 걸 배우는 것만큼 쉽다고 여긴 게 실수였다. t에서 딱 멈추고.
이제는 그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았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잠깐 헷갈렸다 해도. 그건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 p.184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할렘 역시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순서대로, 차근차근 발전해왔으면 좋았을텐데. 발전함과 동시에 더 몰락하고, 또 그 속에서 발전하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흑인 폭동이 일어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다. 그들은 왜 힘을 합쳐서 함께 성장하지 못했을까라는 의문, 그리고 그 속에서 등장하는 같은 흑인들 사이에서도 존재하는 피부색 밝기에 따른 차별, 은근히(?) 느껴지는 백인에 대한 열등감 등. 지금의 할렘이 그동안 많이 발전해 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들려오는 범죄나 인종차별 뉴스는 그 동안 변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폭동에 대해서, 핵심이 뭐냐고 그랬었잖아요. 모든 게 계속 그대로 흘러갈 거니까 모든 저항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요. - p.453
별을 보면 그가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별에겐 별의 자리가 있고 그에겐 그의 자리가 있다. 우리 모두 삶에서 우리 위치가 있다.
사람도, 별도, 도시도. 설령 아무도 카니를 보살펴주지 않고 아무도 그가 딱히 대단한 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그는 자신을 그럴듯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 p.457
카니는 스스로가 "내가 가끔 돈은 없어도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아"(p.160)라고 이야기 하고, 자신이 원하던 복수를 하고서도 "그는 계획을 실행하며 메스꺼운 기분을 느꼈다. 그건 복수처럼 느껴지지 않고 타락처럼 느껴졌다. 그가 사다리를 내려가서 시궁창으로 들어가 이 도시의 추악한 극장에서 공연하는 또 다른 지저분한 배우가 된 것만 같았다."(p.297) 라고 이야기 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살 수 있기를, 그래서 타락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에게 리버사이드 드라이브를 거쳐 스트라이버스 거리로 이사를 가는 것이 중요했다. 아버지가 자행해오던, 자신이 외면하려고 했던 범죄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삶에서 자신의 위치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단순히 성공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살기위해 노력하지만 쉽사리 불법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카니의 삶, 그리고 그가 찾아가고자 하는 삶에 대해 솔직하게 담아낸 콜슨 화이트헤드의 글쓰기는 담담하고 솔직하다. 솔직히 <니클의 소년들>만큼의 흡입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지만, 그가 이 책속에 담아내고자 하는 메시지는 묵직하게 다가왔다.
쉽게 인종차별문제로, 할렘에서 자행되는 온갖 범죄에 대한 이야기로 이 책을 읽는 건 너무 쉽다. 피부색을 떠나, 이 책속에 일어나는 일들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역시도 사는 곳에 따라 은근한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고,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이 존재하고, 빈부격차에서 오는 온갖 공권력의 비리(뇌물 등)에 노출된다. 작가는 아마도 이 책을 통해, 카니처럼 아무리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엉망징창, 뒤죽박죽일지라도, 삶에서 우리의 위치를 찾고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진정 그것이 한단계 자신의 위치를 올리를 것이라고. 이런 책은 언제든 환영이다.
별을 보면 그가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별에겐 별의 자리가 있고 그에겐 그의 자리가 있다. 우리 모두 삶에서 우리 위치가 있다. 사람도, 별도, 도시도. 설령 아무도 카니를 보살펴주지 않고 아무도 그가 딱히 대단한 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그는 자신을 그럴듯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 P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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