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 현대의 상식과 진보에 대한 급진적 도전
이반 일리치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느린걸음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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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 폴폴 날리는 골목길에서 구슬치기 딱지놀이 하다가 목마르면 곁의 우물 두레박으로 길어 마셨다. 점심 먹고는 마을 뒷산으로 줄지어 소먹이러 갔다. 해넘어 돌아오다 우물 속을 들여다 보면 푸른 하늘과 맑은 지하의 청량함이 얼굴을 씻어주고 그날 밤 비상과 추락의 꿈을 만들어 주었다.
어느날 골목길에는 아스팔트가 생기고 노란 경고선이 그어졌다. 지하의 세상을 비추던 우물은 시멘트로 메워지고 돈내고 주유구 같이 생긴 꼭지로 물을... 몸통에 주유하게 되었다. 정적과 목소리와 기억이 사라지고 소음과 신음과 기호가 의미를 차지했다.
골목길, 우물, 뒷산, 정적, 기억... 세상의 모든 공유재가 욕구 충족을 위한 자원이 되어 갈때 진정 무슨일이 벌어졌을까?
이반 일리치, 우파는 물론 좌파조차도 외면한 급진사상가, 그의 책을 읽으면 진보와 보수 담론은 진정한 대립이 아니며 오히려 같은 뿌리의 다른 열매처럼 느껴진다. 신적인 인간들이 어떻게 초라하고 갈급한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전락해 갔는지 고고학적 역사의 거울에 비춰 보인다. 일리치 선생의 글을 읽으면 어떤 안타까움과 동경, 묘한 신비감과 신성함이 느껴지는 건, 근대가 그토록 저주해온 자연의 우연성, 숙명성을 긍정하고 그것을 축복과 은총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삶에서 그것을 몸소 행했기 때문일까. 병원치료를 마다하고 볼에 생긴 종양 혹으로 이십년여 년 고통을 감수한 것은 우리야 미련하다고 하겠지만, 삶의 우연과 축복, 은총이 어떤것인지 자신의 신체로 보여준게 아닐까.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는 선한 사람들이 착실히 부를 축적하면서 조용히 시작된게 아니라 공유지침탈이라는 폭력에서 시작되었음을 강조했다면, 이반 일리치는 그 공유지의 범위를 넓힌다. 길과 우물, 걸음과 아픔, 목소리와 정적에 까지... 결국 그것들은 자연과 인간의 신비와 영혼과 품위 자체가 아닌가.
한국 최대의 '진보' 표방 정당과 최고의 '보수' 지키미 기관이 일대 전쟁을 치르는 시점에 기껏 '우물과 고요' 를 지키자고 자기얼굴의 암덩어리도 품고 살았던 한 바보가 생각나서 길게 중얼거렸다.
연설, 강연문 모음이라 각 꼭지가 독립적이고 어렵지않아 읽을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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