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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가족 ㅣ 높은 학년 동화 25
오미경 지음, 조승연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불혹(不惑)이 되면 삶의 그 어느 것에도 쩔쩔매지 않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별 거 아니지, 뭐!’ 빙긋 웃으며 당차게 인생을 이끌어갈 줄 알았다. 하늘의 뜻을 알고, 인생사 모든 일에 너그러울 지천명(知天命)을 고대할 줄 알았다. 작가가 작품에서 말한 것처럼 ‘마흔 살이 되면 잔잔한 호수처럼 아무 파동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몸집만 커지고 나이만 먹었을 뿐 우리는 여전히 애어른! 사십이 넘고 오십이 다 되어도 삶은 여전히 어렵고, 길을 찾느라 허둥거릴 뿐이다. 10대 사춘기처럼 막막함과 두려움과 어찌하지 못함에 절절거릴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짜’를 ‘진짜’라고 믿으며 꾸역꾸역 살아가는 우리. 남보다 잘나야 하고, 지금보다 더 잘 먹고 잘 살아야한다는 맹랑한 행복에 매달리는 우리. 그런 우리에게 <사춘기 가족>은 말한다.
“어이, 우리 재미있게 살아보자고!”
이 책에는 열세 살 소녀 단오를 중심으로 소설가 엄마, 사진가 아빠, 왕년에 미아리 백구두로 이름을 날렸으나 지금은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 힘겨운 고비들을 지혜와 헌신으로 이겨내는 할머니가 나온다. 단오네 가족은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가서, 각자 사춘기앓이를 하며 따스한 가족으로 거듭난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게 그들의 변신은 폐허가 된 외양간이 북카페로 바뀌는 과정과 꼭 닮았다.
엄마가 재미있다고 한 우사는 개미오줌만큼도 재미가 없었다. 단단히 굳은 소똥이 산처럼 쌓인 바닥, 코를 감싸 쥐게 만드는 고약한 냄새, 소똥이랑 거미줄로 떡칠이 된 벽, 함지박만 한 구멍이 뚫린 천장……
성한 곳 하나 없는 외양간은 엄마의 대대적인 수리를 통해, 바닥이 말끔해지고, 소똥이랑 먼지가 뒤엉켜 제빛을 잃었던 나무 기둥들도 노르스름한 색을 되찾는다. 더러운 벽도, 구멍이 숭숭 뚫린 지붕도 비바람을 막아주는 든든한 구실을 되찾는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때우고 메우고 닦아내는 과정에서 엄마도 몸살을 톡톡히 앓았음은 물론이다.
버려졌던 외양간이 새롭게 변신하자, 마침내 볼품없는 이 공간에도 손님들이 찾아온다. 강아지 단월이, 길고양이 단비, 그리고 할머니와 단둘이 지내는 마루, 다문화가정의 아이인 나리. 그들은 노란 불빛이 유난히 밝은 이 외양간에서 자신들만의 무거운 짐을 벗고 따스한 웃음을 짓게 된다.
아주 특별하고 재미있는 공간, ‘책 읽는 외양간’. 이곳은 단오네 가족만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해와 달이 쉬었다 가고, 강아지와 고양이가 몸을 부비고, 시골 이웃의 사랑방이 되고, 어린 친구들의 놀이터가 되고, 도시인의 휴식처가 된다. 이곳에선 모두 ‘식구’가 된다.
맹랑한 가짜 노릇에 지친 탓일까? 노란 불빛이 호박꽃처럼 피어나는 외양간의 깊은 의자에 앉아, 할머니 노래에 맞춰 사뿐사뿐 빙그르르 춤추는 달빛을 보고 싶다. 담 위에 앉아 감나무 위 보름달을 바라보는 단비의 우아한 모습도 보고 싶다. 사춘기를 시작하는 어린이뿐만 아직도 헤매는 어른들과 함께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꽃피우고 싶다. 그러면 진짜배기 어른이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