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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섬세함 - 이석원 에세이
이석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대충 넘어가도 될 일에 예민하게 굴고 따져 묻고, 그러면서 돌아오는 불편한 시선으로 인해 또 한 번 마음은 움츠려들고, 악순환이었다.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얼어 붙었을까? 왜 이렇게 옹졸해졌을까? 내 마음이 이리 된 이유엔 내 탓도 있겠지만 모든 원인을 내게 돌리기엔 억울했고, 남탓을 하며 합리화하자니 치졸한 느낌이 들어 답답했다.
그러던 중 이석원님의 <어떤 섬세함>을 읽게 되었다.
에세이가 주는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덤덤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누군가 던지는 '힘 내'라는 영혼없는 말 한마디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의 위안이 되어 주고, 포근히 감싸주는 듯한 느낌에 어느새 내 마음이 무장해제가 된다. 사실 나는 공감이 필요했던 것 같다. 힘들고 어려웠던 상황에 대하여 누군가로부터 해결책을 제시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힘들었구나 외로웠구나 그럴 수 있지 라는 따스한 공감의 말 한마디가 간절했던 건데, 그걸 <어떤 섬세함>을 읽는 동안 충족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이해의 위력이란 챕터의 글이 유난히 인상 깊다. 내가 겪어보지 않고서는 이해의 영역을 넓히기 어려운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쉽사리 남을 재단하지 않는 마음가짐. 함께 사는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마음가짐이라 생각된다. 수능 날 뉴스를 보게 되면, 본인의 고사장을 엉뚱한 곳으로 알고 가거나, 시험 시간에 늦어 경찰차를 얻어타고 가는 수험생 이야기를 어김없이 듣게 된다. 저런 정신상태로 무슨 시험을... 이라는 생각만 머릿속을 한 가득 채웠을뿐인데, 얼마전 내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지르고나서 내 자신을 비난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아 나 자신을 무척이나 미워했다.
세상에 나조차도 나를 미워한다면 어느 누가 나를 사랑해줄 수 있을까? 누가 뭐라하도 나란 존재는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전적으로 나만을 믿고 살아가는 존재 아닌가, 말 안되는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금 더 나를 챙기면 될일 아닌가 스스로 마음을 풀고나니, 살 것 같았다. 갑갑해 죽을 것 같았던 순간에서 벗어나니, 다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에세이를 읽는 동안, 마음의 위안을 얻고 공감을 받았다면 에세이는 그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섬세함>은 또 다른 외롭고 힘든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 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