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 책과 사람, 그리고 맑고 서늘한 그 사유의 발자취
김풍기 지음 / 푸르메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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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지만,
어쩌다 그런 이를 발견했을 때 그가 읽고 있는 책이
자기계발서이거나 통속적인(?) 경제관련 서적일 경우,
난 어쩐지 낮은 한숨을 뱉게 된다.
책조차 왕후장상의 씨앗이라도 있는 듯 취급하는 거냐,
라고 반문할 이도 있을 것 같은데,
뭐, 내 나름대로의 좋은 책과 나쁜 책의 구분이 있다면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류의 책이나 독서가
그저 현실적이거나 세속적인 척도에 맞는 성공만을 향해
삶을 끌고가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독서라는 것은,
자신을 그처럼 익숙해진 기존의 삶의 방식으로 끌고가는
관성과 습의 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는 흥미진진하다.
조선의 '베스트셀러'들이 어떻게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런 위치를 점하게 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다면 다루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가 잘 접하거나 들어보지 못한 책들이나,
혹은 우리가 지금껏 읽고 있는 고전에 속하는 책들이
어떻게 지금껏 우리 삶 속으로 파고 들어와
우리를 울게도 웃게도 하고,
한 시대의 사유 전체를 뒤흔들기도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때로는 퍼즐의 조각을 맞추어 가듯,
때로는 추리소설 속에서 숨은 단서를 찾듯,
때로는 그저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옛날이야기를 듣듯
독자가 따라가며 읽을 수 있도록 한다.

너무 쉽게 술술 넘어가서 마치 모든 이야기들이
이미 한 줄에 꿰어진 채로 저자의 손에 그대로
턱 주어지기라도 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나 결코 그 '가벼움'과 '수월함'에 속아
가볍게 여기거나 쉽게 여길 만한 책이 아니다.
글 한 꼭지에 등장하는 온갖 일화나 전설, 시문들을 보노라면,
독자들이 그 자료들에 압도당해 질식하지 않도록 하면서,
여기저기 온통 흩어져있었을 방대한 자료들을
세심하게 고르고 정리하고 다듬어
하나의 서사에 찬찬히 꿰어넣었을
저자의 섬세한 손길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그것이 곧 이 책의 굉장한 힘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생 처음 접하게 된 책 가운데 하나였던 <사십이장경>과 관련된 장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접는다.
독서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할 터.
그리고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가 우리에게 독려하고 있는 것 또한
바로 이런 독서이기도 하다.


  "<사십이장경>에 보면 '하루에 한 끼만 먹고 한 나무 아래에서 하루만 묵되, 삼가 두 번을 거듭해서는 안된다(日中一食, 樹下一宿, 愼勿再矣.)'(제3장)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안온한 집을 버리고 깨달음을 위해 길을 나섰는데, 한곳에 머물러 새로운 안온함을 느끼게 된다면 길을 멈추는 결과를 가져온다. (중략) 길을 떠난 수행자의 삶이 이렇게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구절이 또 있을까 싶다.
  오랫동안 책을 읽으면서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만들라는 충고를 무수히 들어왔다. 마음으로는 언제나 내게 주어진 안온한 삶을 버리고 드넓은 광야로 걸어나갔지만, 이 몸으로는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삶을 <사십이장경>은 내게 권하고 있었다. 하루에 한 끼 식사는 물론 같은 나무 아래에서는 두 번을 머물지 말라는 저 경구야 말로 지금 내가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일이다. 어깨를 짓누르는 거대한 중생으로서의 삶을 벗어버리고,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모습으로 첫발을 내디딜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십이장경>은 그 첫걸음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님을 간곡하게 이야기한다." (2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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