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 역사에 휩쓸려간 비극의 경계인
정병준 지음 / 돌베개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존 인물을 어느 정도 바탕으로 두고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하는 영화 <암살>(2015) 속 여성 독립운동가 안옥윤(전지현 분)이나 <밀정>(2016)의 연계순(한지민 분), 그리고 한 명의 실존인물일 것 같지는 않고, 그 시대의 많은 여성 운동가들의 하나의 집합적 표상으로 그려낸 듯한 <미스터 선샤인>(2018) 속 고애신(김태리 분) 등으로, 역사에서 지워졌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존재가 최근에 구체적 인물의 외피를 입고 조금씩 대중 문화를 통해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작품들을 접하는 사이의 시기에, 어느 해외 학술지에 실릴 학술서 서평 번역 작업을 하다가 그 서평의 대상이 되었던 어마어마한 책 한 권을 접했다. 그것은 바로 정병준 교수가 쓴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역사에 휩쓸려간 비극의 경계인>(2015, 돌베개)이었다. (책의 출간 연도는 2015년인데, 내가 서평 번역을 한 것은 2016년 초였다.)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은 '현앨리스'(1903-1956?)라는 여성을 핵심적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한국사 분야의 학술서다. 사실 이 연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그녀는, 하와이와 상하이를 기반으로 활동한 한인 감리교 목사이자 3.1운동의 주요 지도자들 중 하나였던 현순의 딸이었다는 사실과, 광복 이후 북한의 부수상 겸 외상이었던 박헌영이 1955년 숙청되던 당시, 그의 '미제국주의 간첩' 혐의를 확인하는 중요한 인적 증거로 이용되면서 '1920년 상해 시절 박헌영의 애인'이었다는 식의 평가로 기억되는 정도의 인물이었다. 한 마디로, 주요한 남성 독립운동가들의 주변에 있는 여성으로 기록된 인물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다른 자료들을 일부 접하게 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현앨리스에 대해 본격적으로 집요한 추적을 한 사학자 정병준 교수의 손에서 파편으로 흩어져 있던 그녀의 삶의 모자이크 조각들이 맞추어져, 훨씬 더 풍부하고 생생한 인물이 그려졌다.

이미 4년이나 전에 읽었던 이 책에 대해 새삼스럽게 소개글을 쓰는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여러 대중 문화의 영역에서 이제사 비로소 그려지기 시작한 여성 독립투사들의, 어찌 보면 전형적인, 이미지를 뛰어넘는, 역사의 주체인 동시에 비극적 희생자였던 한 여성 인물의 구체적인 형상을 보았고 뒤늦게라도 언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마저도 없던 때가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제라도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역할을 했던 역사의 주체로서 여성들이 조금이나마 소개되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사실 아직도 그 캐릭터들에는 일정한 전형성이 있다. 가녀린 여인의 몸이나, 알고 보니 반전 저격수였던 여성 독립투사는 <모던보이>(2008)의 조난실(김혜수 분) 때부터 이미 있어 왔는데, 이제 좀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첫 단락에서 언급했던 캐릭터들은 물론이거니와, 시청률 면에서 크게 화제성이 있었던 작품은 아니었지만 심지어 <시카고 타자기>의 류수현(임수정 분)조차 그와 맥을 같이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양적으로도 방대했을 뿐만 아니라, 연결되지 않은 채 온갖 곳에 흩어져 있었을 파편들을 하나하나 맞춰 가며 재구성해서 제시된 현앨리스의 삶은, 여전히 빈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무척 생생하다. (결정적으로, 그녀의 죽음은 여전히 맞춰지지 않은 퍼즐 조각이다.)

그녀는 대대로 유명한 역관 집안 출신의 아버지 현순이 1903년 25세의 나이에, 임신 7개월에 접어든 아내와 함께 하와이로 이민을 떠나면서 하와이에서 태어난 첫 번째 한국인 아이였다. 이미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범상치 않은 역사적 인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였음이 보인다. 그러다 어린 시절엔 아버지의 온갖 인생의 여정을 따라 서울로 돌아갔다 상하이로 건너갔고, 20대 초반이었던 1920년대에는 1921년의 일본유학, 1922년 결혼, 1923년 딸 출산, 1923년 상하이 귀환 등의 파란만장한 행적이 이어졌다. 그리고 정확한 시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1924년 전후 어느 시점에 남편과 결별하고 하와이로 돌아와 아들(정웰링턴)을 낳았고, 1930년대 초반에는 뉴욕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등, 현대의 우리의 기준에서도 파격적인 행보가 이어졌다. (정확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고, 두 명의 남동생들의 기억과 증언이 뉴욕대학이냐 컬럼비아대학이냐를 두고 엇갈리기는 하는데, 뉴욕에서 세계문학과 창작을 공부했다고 기억하는 점에는 어느 정도의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겠지만, 생활고와 인종차별, 영문학의 난관 등을 겪던 이 시기는 그녀에게 결코 녹록치 않은 시절이었다. 하와이에서 출생한 미국 시민권을 가진 한국계 미국인이었으나, 일본의 식민지로 강제된 일본의 국적도, 자신의 출생이 증빙해준 미국의 국적도, 그녀와 그녀의 동생들이 소속감을 느낄 수 없는 세계였다. 이 시기와 그 이후에 이어진 호놀룰루에서의 생활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 상하이에서 생활하며 그녀를 사로잡았던 독립운동과 혁명활동을 마치 하나의 이상처럼 간직하며, 사상적으로 공산주의로 경도되어 갔다. 그리고 (정확한 행적은 여전히 미궁이나) 태평양 전쟁 시기 동안 미 육군성의 여성 언어전문가들 중 하나로 복무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를 거쳐, 광복 이후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상하이에서 만났던 박헌영과의 재회가 계기가 되어 북한으로 들어가 생을 마감했(던 것 같)다.

내가 위에 기술한 것은 사실, 그녀의 생을 그저 연대기 순으로 나열한 정도에 지나지 않고, 심지어 모두 다 서술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어찌 보면, 그 어떤 대중 문화의 서사에서도 다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역동적인 삶을 살았던 이런 인물이, 기껏해야 주요 독립운동가의 딸이었으면서, 또한 어느 젊은 독립운동가이자 혁명가의—그 사실여부조차 미심쩍은—'애인'이었다는 한줄평 정도로 기술되고 말았다는 것이 오히려 기가 막힐 따름이다. 바로 이 빈약한 서술에 역사적 맥락을 제공하며 그녀를 규정했던 몇 가지 키워드를 뛰어넘는 한 인물의 생의 서사를 구축한다.

이런 그녀의 삶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촘촘히 짜맞춘 이 서사는 어디까지나 학술적 정밀함에 기대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논리적인 구멍이 없도록 여러 가지 방대한 자료가 망라되어 있다. 게다가 전체분량은 484페이지인 데다가, 참고문헌이나 주석을 제외한 본문만도 395페이지에 달하는 양이다. 그런 면에서,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된다. 원기 왕성한 19명의 청년들이 사진에 자리했다. 11명의 남성과 8명의 여성은 보타이나 넥타이를 매고 양복이나 중국옷으로 성장을 했다. 모두 엄숙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한껏 자신감 넘치는 포즈로 뒷짐을 지거나 팔짱을 끼었다."

라는 문장으로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하며 시작하는 이 책은 분명 학술서임에도 마냥 지루하지 않다. 아니, 사실 대단히 흥미진진하다. 이토록 역동적인 인물의 삶을 지루하게 서술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라고 호기롭게 외치고도 싶지만, 사실 그것은 이미 완성된 이 한 권의 책을 손에 쥐고 읽고 있는, 복많은 독자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다. 이미 존재하는 선행 연구도 없다시피하고,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남가주대와 하와이대, 그 외 연구소와 체코의 여러 도서관과 문서보관소에서 다양한 자료를 취합할 수 있었다고는 해도, 결국 그 엉키고 풀어헤쳐진 실타래 같은 자료들을 잘 풀어서 하나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직조해낸 것은 어디까지나 저자 정병준 교수의 탁월한 통찰과 서술에 빚지고 있다.

여기다 내가 당시 서평 번역 작업을 언급하며 간단히 덧붙였던 논평에서 했던 말처럼, 이 책은 최근 국내의 활발한 여성주의 및 여성혐오 논쟁과, 그것을 둘러싼 급변하는 분위기에 비추어 봤을 때, 진심으로 더욱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솔직히 무엇보다, 누가 현앨리스를 모델로 해서 소설을 쓰든,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든, 좀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인물, 이런 인생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건 너무도 아깝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기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0-06-06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궁금해집니다. 그나저나 이 글 보고 알라딘에 글을!?!? 하며 잠시 눈을 의심 ㅎㅎ

anuvadak 2020-06-06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워낙 묵직한 학술서다 보니 대중에게 소개될 기회가 한정적인 건 물론, 책을 많이 보는 편에 속하는 인문학 분야 연구자분들조차 안 읽으셨다고 해서, 내 비록 별 영향력은 없음에도 어설픈 소개글이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음. ㅎㅎ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 책과 사람, 그리고 맑고 서늘한 그 사유의 발자취
김풍기 지음 / 푸르메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지만,
어쩌다 그런 이를 발견했을 때 그가 읽고 있는 책이
자기계발서이거나 통속적인(?) 경제관련 서적일 경우,
난 어쩐지 낮은 한숨을 뱉게 된다.
책조차 왕후장상의 씨앗이라도 있는 듯 취급하는 거냐,
라고 반문할 이도 있을 것 같은데,
뭐, 내 나름대로의 좋은 책과 나쁜 책의 구분이 있다면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류의 책이나 독서가
그저 현실적이거나 세속적인 척도에 맞는 성공만을 향해
삶을 끌고가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독서라는 것은,
자신을 그처럼 익숙해진 기존의 삶의 방식으로 끌고가는
관성과 습의 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는 흥미진진하다.
조선의 '베스트셀러'들이 어떻게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런 위치를 점하게 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다면 다루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가 잘 접하거나 들어보지 못한 책들이나,
혹은 우리가 지금껏 읽고 있는 고전에 속하는 책들이
어떻게 지금껏 우리 삶 속으로 파고 들어와
우리를 울게도 웃게도 하고,
한 시대의 사유 전체를 뒤흔들기도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때로는 퍼즐의 조각을 맞추어 가듯,
때로는 추리소설 속에서 숨은 단서를 찾듯,
때로는 그저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옛날이야기를 듣듯
독자가 따라가며 읽을 수 있도록 한다.

너무 쉽게 술술 넘어가서 마치 모든 이야기들이
이미 한 줄에 꿰어진 채로 저자의 손에 그대로
턱 주어지기라도 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나 결코 그 '가벼움'과 '수월함'에 속아
가볍게 여기거나 쉽게 여길 만한 책이 아니다.
글 한 꼭지에 등장하는 온갖 일화나 전설, 시문들을 보노라면,
독자들이 그 자료들에 압도당해 질식하지 않도록 하면서,
여기저기 온통 흩어져있었을 방대한 자료들을
세심하게 고르고 정리하고 다듬어
하나의 서사에 찬찬히 꿰어넣었을
저자의 섬세한 손길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그것이 곧 이 책의 굉장한 힘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생 처음 접하게 된 책 가운데 하나였던 <사십이장경>과 관련된 장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접는다.
독서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할 터.
그리고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가 우리에게 독려하고 있는 것 또한
바로 이런 독서이기도 하다.


  "<사십이장경>에 보면 '하루에 한 끼만 먹고 한 나무 아래에서 하루만 묵되, 삼가 두 번을 거듭해서는 안된다(日中一食, 樹下一宿, 愼勿再矣.)'(제3장)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안온한 집을 버리고 깨달음을 위해 길을 나섰는데, 한곳에 머물러 새로운 안온함을 느끼게 된다면 길을 멈추는 결과를 가져온다. (중략) 길을 떠난 수행자의 삶이 이렇게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구절이 또 있을까 싶다.
  오랫동안 책을 읽으면서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만들라는 충고를 무수히 들어왔다. 마음으로는 언제나 내게 주어진 안온한 삶을 버리고 드넓은 광야로 걸어나갔지만, 이 몸으로는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삶을 <사십이장경>은 내게 권하고 있었다. 하루에 한 끼 식사는 물론 같은 나무 아래에서는 두 번을 머물지 말라는 저 경구야 말로 지금 내가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일이다. 어깨를 짓누르는 거대한 중생으로서의 삶을 벗어버리고,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모습으로 첫발을 내디딜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십이장경>은 그 첫걸음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님을 간곡하게 이야기한다." (255-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라만상을 열치다 - 한시에 담은 二十四절기의 마음
김풍기 지음 / 푸르메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아직 책을 다 읽지는 못했다.

이 책은 다음의 내용이 못내 궁금해서 숨가쁘게

다음 장으로 내처 달음박질치게 하는 책이 아니다.

도리어 천천히 한숨 고르고, 내 발밑을 살펴 가며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그런 책이다.


저자인 김풍기 선생님도 쓰고 있지만

우리는 절기의 변화에서 멀어졌다.

"우주에 뿌리박은 우리 몸을 잊어버려

거대한 인간은 왜소해졌고,

우주와 호흡하던 성스러운 인간은 비속해졌다."

시계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가 삶의 시간이고,

달력이 일러주는 날짜가 생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삼라만상을 열쳐" 우리가 망각한 시공간을 돌려준다.


사계절, 24절기를 테마로 그 삶의 순간들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때로는 진솔하다 못해 적나라하기까지 한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궁금하신 분들은 "추분" 편 홍시 관련 에피소드를 읽어보실 것!^^)

한 시대의 지식인으로 살아가며 경계할 바에 대한 진지한 성찰들이 고루 담겨

"한시"라고 하는, 절기의 변화만큼이나 우리에게 낯설어진 언어의 결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한글의 유용성 덕분에 더 이상 한문을 배우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한문이 익숙치 않은 현대의 우리들에게는

"한시"라는 장르 역시 생경하다.

그러나 "필요"의 문제와는 별개로 한문과 한시라는

고전의 세계가 우리에게 펼쳐주는 풍성한 삶의 풍경들은

놓치기 아까운 것이다.

그래서 좋은 번역과 해설을 통해 그런 글들을 접하는 일은

책장에 뽀얗게 먼지가 앉은 채 꽂혀 있던 책의 먼지를 후 불어내선

문득 들춰보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옷깃을 세워도 이따금 스치는 바람에 등골이 썰렁해"지는 ("입동" 편) 가을날,

꽃망울 터지는 눈부신 봄의 기억은 아직도 너무 아득하고

하늘하늘한 여름 옷차림 생각만으로도 오한이 난다면

그냥 가을과 겨울 편을 먼저 펼쳐서 읽어도 좋다.

그러다 보면 혹시 아는가.

시간을 잊고 책 속에 눈을 묻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바깥을 보면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처럼 첫눈이 살풋 내려 있을지도.


"잠자리가 싸늘한 게 이상했는데

다시 보니 창문이 밝기도 하다.

밤 깊어 내린 눈 쌓인 걸 알겠나니

이따금 대나무 부러지는 소리 들린다."

(백거이白居易, <밤눈(夜雪)> -“대설”편 수록)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3-19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