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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슈퍼히어로 뽑기맨 - 제7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청소년 37
우광훈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2월
평점 :
누구나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지금은 조금 뜸해졌지만, 학창시절 참 만화를 좋아했더랬다. 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한 작품은 일본 소년 점프에 연재되는 인기 작품들. <원피스>를 보며 감동적인 에피소드에 울고, <헌터X헌터> 주인공 곤의 올곧은 눈을 좋아했고 , <나루토>의 사스케가 나루토를 구해줬을 때 열광했다. 이들은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 좋은 스승을 만나서 많은 수련 하에 점점 강해진다. 또 항상 최악의 상황에서도 동료를 믿고 포기하지 않으며, 끝내 승리하는 장면으로 읽는 이의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감동의 승리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되어 주먹을 꽉 쥐고 환호하며 생각한다. ‘와, 나도 루피처럼 되고 싶다!’ 그런데, 누구나 될 수 있는걸까?
여기 또 다른 슈퍼 히어로가 있다. 언뜻 보면 루피랑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약간 다르다. 스냅백을 쓰고 소매에 징이 박힌 재킷을 걸친채 붉은 망토를 펄럭인다. 뽑기맨이라는 책 제목에는 위풍당당한 밀짚모자 해적단의 해골이...길다란 줄에 달린 집게를 물고 있다. 뽑기맨?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에 이은 뽑기맨이라고??

(뽑기 기계와 아빠의 극적인 만남)
“살다 보면 가끔씩 무모해지고 싶을 때가 있죠. 지금이 딱 그런 기분이에요. 전 뽑을 겁니다. 제가 직접 뽑은 드론을 날려보고 싶어요.”
<나의 슈퍼 히어로 뽑기맨>의 아빠는 원래 택배 기사로 일했다. 그런 그에게 닥쳐온 시련. 근본적으로 고칠 수 없는 허리의 통증과 함께 실직이라는 더 한 고통이다. 가장의 실직과 함께 찾아온 가족의 위기를 우리는 그동안 많이 봐왔다. 무너져 내리고, 약해지고, 절망에 빠지는 가장들. 그러나 진서 아빠는 조금 달랐다. 진서가 좋아하는 만화에 같이 빠져 들고, 힙합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며 하루 세 번 운동에 매진한다. 딸과 함께 정서적 공감대를 만들며 그 나름대로의 시간을 버텨낸다.
그런 아빠에게 운명과도 같은 만남이 등장한다. 진서가 좋아하는 쵸파 피규어를 뽑기 기계에서 멋지게 뽑아낸 것! 그 뒤 아빠는 뽑기에 매진하게 되고 점점 실력을 쌓아가며 이 구역의 ‘뽑기왕’을 꿈꾼다. 매주 수요일 오후면 ‘숄더 어택’이라는 비기를 알려준 킹마트 영감과 합동 작전을 펼쳐 뽑기 기계를 정복하는 수련을 쌓는다. 생전 쓰지 않던 글도 뽑기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리뷰를 남기고, 아프리카 TV의 뽑기 방송까지 도전한다.
그러나 아빠의 모험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다. 야심차게 준비한 뽑기 방송은 시청자들의 막말만 남기고서 끝나 버렸고, 새롭게 등장한 라이벌? 악당 격인 조 사장과의 실력 차는 극심하다. 베란다에 가득한 뽑기 상품을 두고 치워달라는 아내의 시선도 무심하기만 하다. 아빠는 과연 모든 역경을 딛고 뽑기왕이 될 수 있을까.
소설의 화자인 진서. 아들로 오해받기 일쑤인 짧은 머리에 헐렁한 힙합룩을 걸치고 다닌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나이인 중2지만 아빠와 사이가 좋다. 그렇지만 진서도 역시 사춘기 소녀이기에, 아빠의 아프리카 방송 데뷔에서 주변 시선을 먼저 의식 한다던가 친한 이성 친구와의 관계에서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아흔세 살 할아버지 옆에 드러누워 코를 골며 잠드는 일흔 한 살의 아들 모습을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하는 솔직함까지 구비한 이 묘한 매력의 소녀에게 점점 빠져들어간다.
아빠가 뽑아준 골드 로저 피규어를 짝퉁 취급한 은새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는 모습, 경찰의 핀잔에 대드는 모습에서 아빠를 사랑하고 아끼는 진서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엄마의 불륜 의혹을 우연히 알게 되고서도 끙끙 앓으며 혼자 감내하게 된다.
“아빠도, 너도, 그리고, 나도, 그렇게 우린 여전히 성장 중이지. 이 세상에 완전한 어른은 없어.”
이 소설에서 엄마는 진서가 생각하는 가족 갈등의 시발점이자 해소의 열쇠 역할을 한다. 소설 막바지에 알게 된 엄마의 진심을 알고 기다려주는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깨우치게 된다.
“난 내가 지킬거야.”
“뭐?”
“아빤 말이야. 그냥 내 옆에서 내가 잘 자라는지 지켜봐 주기만 하면 돼. 물론 잔소리 정도는 괜찮아. 하지만 그 이상은 거절하겠어.”
조사장과의 뽑기 결투가 끝나고 자신을 지켜준다는 아빠의 발언에 진서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빠의 보호를 거절하고 혼자서 거친 파도가 이는 대양으로 나가겠다는 당찬 진서의 발언. 어찌 보면 이 소설은 뽑기맨인 아빠와 진서의 동반 성장 소설이다.
“문득, 한때 뽑기왕을 꿈꿨던 한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어. 그 남자에게는 그 남자의 모험이 있었고, 그 남자의 바다가 있었어. 거친 파도와 고난을 견뎌 내야만 닿을 수 있는 꿈 같은 것 말이야. 아빤 지금 두근두근해. 또 어떤 외로운 싸움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하지만 두렵지 않아. 아빤 더 강해질 테니까. 그렇게 내가 원하는 바다의 끝에 도착할 거야. 그러니 아빠의 부활을 기대해 줘.
오케이?
마이 슈퍼히어로.”
이 장면에서는 진심으로 여느 소년 만화의 엔딩 못지 않게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우리의 뽑기맨 아빠의 모험을 이보다 더 잘 축약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보물을 얻겠다는 거창한 꿈이나 목숨을 걸고 하는 화려한 전투는 아니었을지라도 그에게도 그 만의 꿈과, 동료와, 모험이 있었다. 그리고 아빠는 다시금 새 마음으로 출발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돛을 올리고 출항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왜 이렇게 떨리죠?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요.”
“걱정 마. 주인공은 쉽게 죽지 않는 법이니까.”
<나의 슈퍼 히어로 뽑기맨>은 읽는 내내 유쾌하다. (자신의 작품 제목을 돌려까는 작가의 센스라니!) 뽑기왕의 길을 향해 고군분투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그를 응원하게 된다.
또 굉장히 세세하게 묘사한 대구의 정경 묘사, 동시대의 뮤지션들과 실존하는 BJ들의 닉네임은 순식간에 독자를 이야기 속 현실로 빠져들게 한다.
실직, 가족 관계, 교우 문제, 노년의 건강과 사랑, 고령화, 사업 실패 같은 나열만 해도 우울해지는 단어들이 이야기 속에서 아름답게 잘 버무려지고 피어난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 다 읽고 나면 괜시리 기분 좋아지고, 피식 웃게 되고, 갑자기 가족에게 핸드폰 메시지를 보내게 되는. 그리고 동네 편의점 입구에서 뽑기 기계를 보면 한 번 더 기웃거리게 되는, 그런 이야기였다.
뽑기맨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눈으로 볼 때도 여전히 세상은 먹고 살기 팍팍하고 힘겹다. 학창시절에는 공부에, 대학생은 영어 시험 점수와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린다. 구직 활동에 힘겨운 나머지 떡볶이집 오빠처럼 알바하며 재미있게 살겠다는 이도 보이고, 기껏 얻은 직장도 안정적이지 않다. 자영업 쪽은 더욱 상황이 좋지 않아 조금만 오랜만에 익숙한 골목을 방문하면 그새 간판을 바꾼 가게들이 부지기수다. 그래도 세상의 뽑기맨, 뽑기우먼, 뽑기키즈들이여, 기운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인공은 쉽게 죽지 않는 법이니까!
(결국 집 근처 뽑기방에서 루피랑 미호크를 뽑고야 말았다... 루피 5번, 미호크 12번 만에 성공! 손맛이 이런거로구나!!!)
(작가님이 뽑기에 빠지지 말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