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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 ㅣ 나의 대학 사용법
이범 지음 / 창비 / 2018년 5월
평점 :
[서평]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
이 책을 읽기 전, 이렇게 적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순간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라 꽤 놀랐다. 학창시절 문제집을 사서 첫 문제를 풀기 전 꼭 그랬다. 날짜와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문제도 언제가는 풀 수 있기를” 하는 글을 끄적거렸다. 그 때는 뭔가 ‘척’해 보이려고 그러지 않았을까 싶은데, 마흔이 된 지금은 백퍼 진심 절박한 심정으로 꾹꾹 눌러썼음을 고백한다.
“어떻게 살 것 인가?” 이 질문은 삶의 태도 등을 포함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론적인 그 무엇 또한 담겨 있다. 이 책은 후자에 대한 안내서쯤 되지 않을까 짐작했다. 애초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음을 이제는 알기에, 다만 이 책을 통해 약간의 팁을 얻을 수 있다면야. 이런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의 대학 사용법’이란 부제가 붙었다. 부제에서 짐작하듯이 현재 대학생들, 청년층을 주 독자로 겨냥하고 있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학부모, 교사뿐만 아니라 나같은 삶의 실질적 ‘하우투’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쯤 읽어볼 만하겠다 여겼다.지극히 개인적인 해법을 도모한 것. 그런데 아니었다. 책은 집단적인 해법을 또한 담고 있다. 말그대로 실용과 정치를 모두 담은 셈이다.
개인적으로 4차 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4차 산업 혁명으로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겁을 주는 사람들이 워낙 많은 요즘이다. 저자는 에르네스트 만델이라는 경제학자의 말을 빌려 일침을 가한다. “너 내일 살아 봤냐?” 그리고 말한다. 4차 혁명을 지나치게 ‘기술’ 수준에서 이해하려 하지 말라고. 기술 진화를 예측하려 하지 말고, 알파고가 개인의 인생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 주느냐를 생각해보자고. 그 메시지는 바로 ‘네가 일생 동안 직업을 여러 번 바꿀 확률이 높아졌다’(62쪽)는 것인데, 그렇다면 4차 혁명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사회적’으로는 고용 보험(실업급여)과 재교육기회가 중요하다. 다른 일자리를 찾거나 새로운 직업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그동안 국가가 생계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직업을 위해 뭔가를 배울 기회를 갖는 것은 산업의 수준을 높이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등록금이 매우 싸거나 무료다. 등록금이 싸면, 교육 기회 균등이라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뿐 아니라 재교육 비용이 낮기에 직업을 바꾸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진다. 대학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이를 통해 직업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64~67쪽)
그러면 ‘개인적’으로는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바로 ‘자기 주도 학습’ 능력이다. 자기 주도 학습은 네 단계로 되어 있다. 학습의 목표 설정, 수단 선택, 실행, 평가. 이 네 가지를 모두 자기 주도적으로 하는 게 바로 자기 주도 학습이다. (70쪽)
이걸 공교육에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다시 ‘사회적’ 해법으로 돌아간다.) 공교육에서 학생들에게 학습 목표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게 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수강 신청 제도, 프로젝트 수업(과제 연구 수업)이 그것이다. 앞으로 교육의 초점은 자기 주도 학습 능력, 특히 본인이 스스로 학습 목표를 설정하는 능력에 맞춰야 할 것이다. (71~75쪽)
이와 같이 책에서는 개인으로서 갖출 것과 집단으로서 목표로 삼아야 할 것들이 상충되는 것은 물론 종종 모순되는 지점이 발생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써 보려고 애썼다고 저자는 말한다. 학원가 스타 강사, 서울시 정책 보좌관, 경기도 교육감 선거 캠프 활동, 민주연구원 부원장, 문재인 후보 대선 캠프 활동,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화려한 이력을 통한 경험의 집합체이자 결정체가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뭔가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실용서로 시작했는데, 막상 책을 덮으니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요하는 제안서를 한가득 받은 기분이다. 다만 활발한 논의를 위해서는 비교 분석이 가능한 다양한 제안들이 다양한 계층에서 나와야 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내용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면 더욱 발전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보 혁명’이라 일컫는 저자의 제안들이 정책이 되어 실질적으로 집행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이론적으로 옳고 그른지, 정치적으로 일관성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에 대한 일차적 물음에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이라고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