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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ㅣ 시요일
강성은 외 지음, 시요일 엮음 / 창비 / 2018년 4월
평점 :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사랑 후에 오는’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시들이 한데 모여있다. 이별한 이들이 한데 모여 자신의 사랑을 그리고 이별을 이야기한다. 그 슬픔을 안으로 삼키며 가만가만 읊조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차마 억누를 수 없기에 그 울분과 아픔을 격하게 쏟아내는 이도 있다. 나는 그저 멀찍이 떨어져 앉아 이들의 연가를 듣는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나직이 소리내어 읽어보기도 한다. 찌질하기도 처절하기도 처연하기까지 한 시들의 향연이다. 알흠답다. 이토록 영롱하게 반짝이는 아름다운 이별이라니! 찬란한 슬픔이라니! 감탄한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책을 덮는다. 우습게도 그 사랑에, 그 이별에 스멀스멀 질투가 인다.
책의 뒷면. 시집에 실린 모든 시에서 한줄씩 옮겨놓은 시구들. ‘가만, 가만, 가만히’ 읽어본다. 그리고 몇 개를 골라 지금의 나를 적어본다.
언젠가 나도 그랬습니다. 언제나 ‘당신의 생각을 켜놓은 채’ ,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 나 잊고 나도 당신 잊고’ 이렇게 살아갑니다. ‘내 사랑도 그렇게 흘러갔다는 것을’ 알기에.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기에.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게 되기를’ 이라는 시구에 많이 아프다. 나, 아직도 사랑을 꿈꾸는가. 살짝 민망해질 찰나 윤종신이 떠올랐다. 그때의 내가 애정했던. 그는 말했다. 나이 50이 되기 전 ‘찐한’ 이별 노래를 한 번 더 불러보고 싶었다고. 그래서 탄생한 노래 <좋니>. 노래도 노래지만, 열창하는 그의 모습 자체가 한 편의 시라 생각한다.
고백컨대, 나는 아직도 사랑을 꿈꾼다. 사랑 후에 오는 이별 또한. 어쩌면 그것은 한낱 꿈에 불과할테니까.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일테니까.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 황인찬 ‘무화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