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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 - 제22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고학년 부문 대상 수상작 ㅣ 창비아동문고 292
박하익 지음, 손지희 그림 / 창비 / 2018년 3월
평점 :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도깨비폰’이란 단어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자동으로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방망이로 두드리면 무엇이 나올까? 금 나와라와라 뚜욱딱, 은 나와와라 뚜욱딱’ 도깨비 방망이를 스마트폰으로 바꿔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딱딱 잘 맞아 떨어져 감탄하게 된다.
생각해보라. 스마트폰 세계가 얼마나 이상하고 아름다운지.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 문을 열면,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세계가 순식간에 펼쳐진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금은보화는 저리가라, 그보다 더한 볼거리, 놀거리가 쏟아지니 온 몸과 마음이 홀려버리는 건 시간 문제다. 관건은 그곳에서 스스로 나오는 것. 하지만 제 발로 아니 제 손으로 들어갔으나 스스로 나오기가 결코,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상투적이고 관념적인 이 같은 글을 지금 아이들 처지에서 그 눈높이에 맞춰 흥미롭고 재미나지만 제법 진지하게 풀어내고 있다. 현대의 스마트폰과 옛이야기 속 도깨비가 능청스럽고도 천연덕스럽게 어우러진 판타지 동화다. 요즘 도깨비는 ‘촌스러운’ 방망이 대신 스마트폰을 쓴다니! ’스마트폰을 통해 현실과 절묘하게 연동되는 도깨비 세상’ 풍경 묘사는 단연 압권. 깜찍하고 발칙하며 기발하다. 작가의 상상력에 엄지 척!
김서방온, 깜쪽가튼, 꼬부랑캔디, 장원급제, 술술술, 달빛각시탈, 만들고 등은 도깨비폰에 깔리는 앱 이름이다. 각 앱들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시길. 또한 ‘만리경’ , ‘사천꽃밭’ 은 어떤 사이트일지. ‘날대야’에 이르러서는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기발랄 재치와 재미가 주는 감동은 딱 여기까지였으니.
[우리한테 빠져서 벗어나지 못해]
요즘 들어 도깨비폰을 사용하면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도깨비폰을 쓸 때는 좋았지만 쓰고 나면 몸이 무겁고 머리가 산만해져서 무언가에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도깨비들이 부르는 대로 쫓아다녀야 하니, 잠을 푹 잔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96쪽)
밥도 안 먹고 잠도 안자. 계속 우리랑 놀려고만 하지. 우리는 사람이랑 노는 걸 좋아해. 인간 중에는 재미있는 애들이 많거든. 그런데 같이 놀던 아이들이 죽어버리면 아주 골치 아파. (116쪽)
애든 어린이든 요즘 인간들은 다 마찬가지야.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붙들고 있지. 자기 혼이 빠져나가도 모른다니까. 생기가 부족해지면 자꾸 딴 생각만 하고, 가만히 있지를 못해. 뻔한 생각만 하는 따분한 인간이 되어 가는 거야. 놀 만한 사람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118쪽)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폐단을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이들은 불편하고 불쾌하지 않을까. 아이들보다 어른들, 특히 부모들이 더 좋아할 작품이겠다. ‘권장도서’로 손색이 없다. 과연 이 책을 마음 놓고 편하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하는 삐딱하고 불량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깨비들이 지우를 선택한 이유와 윤진사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절정에 이른다.하지만 명쾌하지 않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기분 별로다.
‘어떤’ 이유로 도깨비 친구가 된 지우와 대조적인 인물로 ‘끼가 넘치고 얼굴도 예뻐서 연예인이 되고 싶은’ 외모와 유행에 관심이 많은 수진이를 등장시킨 점은 영 입맛이 쓰다. (이런 친구들이 스마트폰을 쓰면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아니던가. 너무 나갔나?)
작품 속 도깨비도 인정하지 않았는가. 지우는 ‘정말 드문 아이’ , ‘아주 괜찮은 애’라고. 지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깨닫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정말 드물고 아주 괜찮은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이란 생각을 또 하고 말았다.
곳곳에 장착된 재미 요소는 분명 있으나 주인공 지우의 독자적 나홀로 분투기로 여겨지는 이야기는 재미와 흥미를 떨어뜨리니, 아이러니하다.
[마음을 지켜라? 쉽진 않겠지만]
마음껏 놀고 싶었다. 공부니, 성적이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무언가에 푹 빠져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답답했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받느라 친구들과 놀기 어려웠다. 방과 후에는 이 학원 저 학원 뿔뿔이 흩어졌다. 가끔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나서 놀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정말 드물었다. 미세 먼지가 심해진 후부터는 더욱 어려워졌다.
친구들과 놀기 위해서는 날씨가 춥지도 덥지도 않아야 하고, 미세 먼지 없는 맑은 날이어야 했다. 또 방문 수업과 학원 수업을 모두 마친 다음, 다른 친구들의 일정까지 운 좋게 맞아야 했다. 그런 날은 고작해야 한 달에 하루 이틀 정도였다. (16쪽)
읽고, 또 읽고, 다시 읽었다. 고백컨대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나는 이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자 끝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도깨비폰을 사용하든 안 하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도깨비 아이들고 놀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중요한 건 마음을 지키고 영혼을 차분하게 다잡는 것이었다.
고요함 속에 깊이 잠겨 마음을 평온히 지킬 수 있다면 도깨비들과 얼마나 어울리든, 도깨비폰을 어떻게 사용하든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게 분명했다. (185쪽)
마음을 지키는 건... 절대로 쉬운 게 아니야. (186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지켜라! 쉽진 않겠지만...’ 작품의 결론이다. 날 것 그대로의 현실, 그럴 수 밖에 없는 외부적, 사회적 맥락을 외면한 채 모든 문제의 원인뿐만 아니라 그 해결 방안 또한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 생각한다. 너무했다. 더구나 이 작품의 대상은 어린이가 아닌가. 치사하고, 비겁한 결론이라는 생각이 좀처럼 떠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