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부시대가 오는가
로버트 카플란 지음, 장병걸 옮김 / 들녘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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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들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만 구경하고 생각했는데'카플란'은 또 다른 사각지대를 발견하고 예리한 필치로써 지적해 준다. '많은 사람들은 암암리에 인정하면서도 공개적으로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진실'에 대한 준엄한 기록이다.라고 서두에 밝히고 있다.그렇지만 정치권에서 말을 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서 밝히고 있다.

환경 파괴와 자원부족, 지역, 집단 이기주의, 종족분규와 잦은 전쟁, 대규모 난민 이동, 식량난 등으로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지역에서 무정부상태가 일반화되고 있으며, 그런 현상이 주변지역으로 서서히 파급되고 있다는 지적은 '냉전 종식 후의 세계변화'라는 우리의 낙관적인 미래상을 어둡게 만든다.
즉 세계지도가 다시 그려진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이상이나 실효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지난 98년의 러시아 금융위기에 관해, '민주주의가 러시아 국민의 생활을 향상시킨 정도보다는 독재체제가 중국 국민들의 삶을 향상시킨 정도가 훨씬 더 기여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 준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또 아프리카 각국에 서방식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것은 오히려 극도의 혼란과 부정부패, 그리고 쿠데타의 악순환을 가져오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그들 나라에는 민주주의가 존립하기 위한 전제 요건들(일정 수준의 사회적, 경제적 발달상태, 건실한 중산층, 전통, 낮은 문맹률 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표면적으로는 의회제도가 유지되지만 막후에서는 군부와 보안 기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소위 '혼합정권(hybrid regime)'을 민주체제 대신에 채택한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성공하면서 장기적으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기반을 다지게 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후진국의 독재자들이 흔히 내세우는 개발독재론과 일맥상통한다. 덩샤오핑과 그 후계자들이 개혁개방 정책을 취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1당독재를 유지했던 중국, 그리고 신권위주의 정권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리관유 치하의 싱가포르 등이 그 예로 거론된다. 우리는 타국의 사례들에 대해선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이론을 한국에 적응하는 문제는 어떨까? 예컨대 박정희 정권은 이런 기준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까?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다시 하게끔 지적을 하고 있다.
세계 속의 미국의 역할과 관련해서도 이율배반적인 감정과 기대를 지적한다. 많은 나라들은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난한다. 그러면서도 코소보의 '인종청소' 같은 인도주의적 비극이 일어나면 강대국들, 특히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이 주도적으로 개입해 학살 행위를 중단시키고 평화를 유지시키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미국의 패권주의가 '세계경찰 역할에 대한 비용지불이 당연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1980년 한국의 광주 민주화 운동 때 미국은 결국 신군부의 손을 들어줬다. 민주화를 열망하던 많은 한국인들은 민주주의 선교사를 자임하던 미국이 어떻게 독재자들의 피묻은 손을 들어줄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나 미국의 외교정책은 국익 증대라는 최우선 목표 하에 냉철한 현실주의와 균형주의에 입각한 정책을 견지하고 있음을 이 책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다시 말해 좀더 큰 善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惡을 받아들인다는 원칙이다.

베트남전쟁에서 드러난 키신저의 외교철학중'장기화된 국내적 평화는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결론도 우리의 미래에 끔찍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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