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 서현의 우리도시기행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들은 매일 거리를 걷지만 거리에 대해 무관심한 것 같다. 이 책은 저자의 건축학적인 전문 지식과 인문학적인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도시의 거리를 냉철하게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거리에 대해 무관심했던 우리들은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눈으로 거리를 다시 조망하게 될 것이다. 우선 우리는 거리의 주체로서 거리에서의 주인 의식을 확립하게 된다. 전에는 자동차에 밀려난 보행 환경에 대해 무관심했으며 그것이 매우 당연한 것이라고 인식했지만, 이제는 보행의 권리를 당연히 행사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은 '서현의 우리 거리 읽기'라는 제목으로 동아 일보에 연재되었던 이야기를 건축가 서현이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을 더 첨가하여 다시 엮은 것이다. 같은 내용을 책으로 다시 읽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마음으로 신선하게 읽을 수 있었다.
주로 서울시의 거리와 몇몇 지방 도시들의 거리 등 모두 20여 곳의 거리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명동길, 을지로, 남대문로, 로데오 패션 거리, 그리고 대전시 문화의 거리가 소개되지 않아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 거리들이 빠진 이유는 지명도와 역사 문화적인 배경이 덜 중요해서가 아니라 저자가 지닌 경험의 한계라고 말하고 있다. 즉 거리란 그 곳을 경험한 사람만이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더 많은 거리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기약없는 미래의 언제쯤으로 미루고 있다.
거리에는 역사가 있고 삶의 문화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거리는 사람보다는 자동차가 우선하며 무분별하게 개발되어 왔기 때문에 역사의 발자취가 계속적으로 사라져 왔다. 저자는 이러한 면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면서 우리 거리에 문화와 역사를 다시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종로는 서울시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거리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람이 없어서 활기가 없다. 그 거리에는 프랑스 파리시의 샹젤리제가 갖지 못한 아름다운 산, 600여 년의 역사가 있지만, 샹젤리제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으로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약속을 할 수 있고, 기념 사진도 찍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종로의 넓은 아스팔트를 모두 뜯어내 이 곳을 세종 공원으로 조성하면 어떨까? 저자는 활기찬 사람들로 가득한 세종로의 새로운 모습을 상상화로 잘 스케치하였다.
건축가는 물리적인 요소를 통해 도시를 바라보고 해석하며, 그러한 방식으로 건물을 설계한다. 그러나 그 건물들이 모인 거리를 바꿔나가는 주체는 건축가가 아니라 시민이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시민들이 거리를 바꿔나가기 위해서는 매일 그냥 지나가던 곳들을 새롭게 보아야 하며, 그 모습이 어떤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요컨대 이 책은 우리의 거리를 낯선 곳으로 인식함으로써 그 거리를 전혀 새로운 장소로 바라보도록 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글을 맺는다. '시민이여 분노하라. 건축가들을 비난하고 책임을 물어라. 건물이 아직도 도시를 더럽히거든 그 이름에 침을 뱉어라.'
우리 도시의 경관과 거리의 문화가 분노하는 시민들에 의해 건강하게 다시 만들어져 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이 도시의 거리를 걷고 싶지는 않더라도, 걷기 편한 공간으로 새롭게 거듭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